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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공포증'에 빠진 KIA, 앞으로가 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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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의 세계에서 가장 피해야 할 것이 바로 '천적'을 만드는 일이다. 개인 종목이든, 단체 종목이든 상관없이 '천적'이 생기는 순간 좋은 성적을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반복되는 승부를 하다보면 전력에 따라 어느 정도는 희비가 엇갈리게 되는데, 대부분의 경우 근소한 승패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천적 관계'가 형성되면 일방적으로 승패 차이가 벌어지게 된다. 마치 동물의 세계에서 포식자와 피식자의 관계처럼 되어버리는 것이다.

올시즌의 KIA가 바로 그런 상태에 빠져들고 말았다. 상대는 삼성이다. 벌써 11연패의 깊은 수렁에 빠지면서 KIA 선수단 전체가 잔뜩 의기소침해 있다. 마치 '사자 공포증'이 선수단을 휩쓸고 있는 듯 하다.

KIA는 10일 광주 삼성전에서 또 다시 초반 선발투수 김진우가 난타당하면서 4대10으로 무릎을 꿇고 말았다. 지난 4월 28일 광주경기부터 시작된 연패 숫자가 '11'로 늘어난 순간이다. 결국 올해 KIA는 삼성에 1승12패의 일방적인 열세를 보이고 있다. 이쯤 되면 '천적', '사자 공포증'같은 표현들이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라고 받아들일 수 있다.

이러한 천적 관계가 형성된 것은 상당히 의외의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삼성이 지난 2년간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를 제패한 최강 전력 팀이라고는 해도, KIA 역시 그리 약한 전력을 가진 팀이 아니었다. 시즌 개막 전 자신있게 '한국시리즈 우승'을 목표로 내걸 만큼 팀 전력에 대한 확신과 올해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일찌감치 외국인 선수 재계약도 마쳤고, FA 김주찬도 영입했으며 기존 전력에서의 누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선동열 감독의 대 삼성전 필승 의지가 컸다. 우승을 하기 위해서는 결국 삼성을 넘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마침 선 감독은 2005년부터 2010년까지 6년간 삼성 사령탑으로 장기 집권했던 인물이다. 팀 구성원의 속성과 장단점, 팀 플레이의 형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KIA가 삼성과의 경기에서 밀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컸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나니 KIA는 매 경기 처참한 모습을 이어갔다. 쉽게 표현하자면 '투수들은 뭇매를 맞았고, 타자들은 헛방망이만 돌렸다'고 할 수 있다. 경기를 치르다보면 투수나 타자 모두 각자의 컨디션에 따라 잘하거나 못할 수 있다. 그런데 유난히 삼성과 만나면 KIA의 전 선수들은 위축되고 있다. 바로 직전 경기까지 좋은 경기력을 보이다가도 삼성을 상대하면 거짓말처럼 부진하기 때문이다.

10일 경기에서도 이런 모습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김진우가 일단 2회부터 진갑용에게 3점 홈런을 맞으며 팀에 '불안'과 '공포'가 짙게 깔리기 시작했다. '오늘도 지겠구나'하는 공포심은 순식간에 덕아웃으로 퍼졌다. 결국 4회에 벌써 0-7로 끌려가며 선수들은 투지를 잃었다.

반격의 순간이 없던 것도 아니다. 4회말에 무사 2, 3루와 1사 만루의 기회가 차례로 생겼다. 여기서 적어도 2~3점 정도를 낼 수 있었다면 KIA가 반격의 발판을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무사 2, 3루에서 4번타자 이범호의 삼진과 1사 만루에서 이준호의 우익수 파울플라이, 최희섭의 내야 땅볼이 연달아 나오며 결국 1점도 못내고 말았다.

결국 4회에서의 무득점은 KIA 선수단에 '사자 공포증'을 급증하는 악재로 작용하고 만다.

문제는 이렇게 형성된 일방적 혹은 지배적 관계가 올 시즌에 국한될 것이냐는 점이다. 자칫 올해 뿐만 아니라 내년 시즌 이후에도 계속 지속될 수 있다는 면에서 사태의 심각성이 드러난다. 역대 사례를 보면, '천적관계'는 단일 시즌에 끝나지 않은 경우가 꽤 있다. 한 시즌을 넘어서 다음 시즌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2002년 9월 27일부터 2003년 9월 13일까지 롯데는 두 시즌에 걸쳐 KIA에 18연패를 당했다. 이어 롯데는 2008년 5월 25일부터 2009년 5월 7일까지 또 두 시즌에 걸쳐 SK에 15연패를 당하고 만다. KIA도 이렇게 되지 말란 법이 없다. 현재 특정 선수의 부상이 있다거나, 전력 누수가 심각한 상황이 아님에도 삼성에 일방적으로 지고 있다는 건 결국 기세에서 밀리고 있다는 뜻이다. 이 보이지 않는 전력이 승부에 미치는 영향력은 의외로 크다. 결국 이러한 관계가 청산되지 않는다면 KIA의 우승 목표는 당분간 신기루에 불과할 수 밖에 없다.

광주=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