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의 '닥공'이 한창때만 못하다 해도 전주성 방문이 만만한 건 아니다. K리그클래식 21라운드를 맞아 전북 원정을 떠난 강원의 속사정도 마찬가지. 주중 포항 원정 패배로 흐트러진 마음가짐을 간신이 부여잡았다 하지만, 주중-주말에 이어 곧장 한여름 장거리 원정을 떠나느라 숨까지 턱턱 막혔을 터다. 게다가 배효성이 퇴장 당했으며, 김오규가 경고 누적으로 경기에 나설 수 없어 중앙 수비에 커다란 구멍까지 생겨버렸으니 강원은 치명적인 핸디캡까지 달고 임해야 했다. 그랬던 이들은 예상 밖 선제골을 뽑아냈으나 이내 동점골을 내주었고, 후반 37부터 44분까지 딱 '7분' 사이 벌어진 끔찍한 일에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지난 포항전과는 시나리오가 달랐다. 후방에서 볼을 짧게 돌리던 중 상대의 전방 압박에 무너졌던 강원은 과거 김상호 감독 시절에도 보이곤 했던 문제를 '복사-붙이기'한 듯했다. '티키타카' 바르샤와 비슷하게 중앙 수비를 넓게 배치하고 골키퍼는 킥을 짧게 처리한다. 여기엔 볼을 점유하며 공격으로 전환하려는 의도가 듬뿍 담겨있었는데, 상대 압박과 역습에 그대로 노출되며 효과를 보진 못한 건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일단 전북이 포항만큼 조직적으로, 적극적으로 나오지 않은 데다 진경선이 볼을 잘 간수해낸 덕분. 수비 진영에서 볼 점유를 늘린 강원은 상대를 끌어냈고, 그 측면 뒷공간을 치는 공격을 시도했다. 왼쪽 진영 전재호의 패스와 진경선의 크로스가 최진호의 머리에 걸려 선제골로 연결된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였다.
중앙 수비도 괜찮았다. 배효성-김오규의 호흡이 안정 궤도에 오르며 김학범 감독의 깊은 신뢰를 얻어온 게 사실. 그래서였을까. 선발과 교체 명단을 드나들었던 김진환은 독이 바짝 오른 모습으로 이동국이 볼을 잡기도 전 헤딩으로 커팅해내는 등 강한 인상을 남겼다. 경기 출장 기회를 많이 잡지 못한 최우재 역시 레오나르도와의 스피드 경합에서 깔끔한 태클로 실점 위기를 넘겼다. 힘과 높이, 그리고 센스까지 겸비한 이동국-케빈 투톱을 꾸준히 견제하며 단단한 모습을 보여줬던 건 이들의 투혼 덕분이었다. 때로는 경고를 받을 만큼 거친 모습도 보였으나, 그만큼 그들에겐 이번 전북전이 절실했다는 얘기가 아닐까 싶다. 위기와 우려를 괜찮은 플레이로 탈바꿈한 강원에서는 2009년 2-5 승, 2010년 1-3 승으로 전주성을 함락시킨 기세까지 느껴졌다.
하지만 최진호의 선제골 이후 곧장 내준 동점골에 흐름이 휘말리고 말았다. 공중볼 경합 이후 세컨볼을 향해 달려드는 상대 공격수를 번번이 놓쳐 아크 정면에서의 공간을 내줬던 이들이 전반 21분 케빈의 중거리 슈팅에 골까지 얻어맞은 것. 전북의 진영에서 길게 넘어오는 볼에 대한 대비는 잘 돼 있던 편인데, 그 볼이 흐를 때 수비형 미드필더 진경선-이창용과 중앙 수비 라인 사이가 순간적으로 벌어져 공간이 비는 현상이 발생했다. 중앙 수비 둘에, 최근 꾸준히 출장하던 박상진 대신 남궁웅이 나서며 플랫 4중 무려 세 명이 바뀐 상황을 감안하면 1-1 스코어도 나쁜 결과는 아니었지만, 전북이 꿈틀대며 살아났다는 흐름을 지나칠 순 없다.
이어 돌입한 후반에는 좀처럼 치고 나가기가 어려웠다. 최강희 감독의 교체 카드 중 서상민은 공격 불씨에 생명의 바람을 불어넣었고, 티아고는 여기에 기름 한 드럼을 들이부어 활활 타오르게 했다. 이들을 상대하는 강원 수비진은 안정감이 부쩍 줄었고, 사소한 패스미스까지 나오면서 그 맥을 끊어먹곤 했다. 계속해서 뒷공간으로 들어오는 티아고의 패스에 라인이 밀려난 만큼 강원 공격진이 볼을 잡는 시간대도 짧아졌다. 웨슬리가 들어온 이후 그나마 달라진 모습을 종종 보이곤 했으나, 철석같이 믿었던 지쿠의 영향력은 기대 이하였다. 활동 폭이 좁아 볼 잡는 빈도도 낮았고, 처리 속도가 늦어 상대 수비에 둘러싸이기 일쑤였던 지쿠, 하지만 이 선수 대신 다른 자원을 투입할 형편도 안 됐던 김학범 감독의 머릿속도 무척이나 복잡했을 것이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가까스로 버텨냈으나, 남궁웅이 옆구리를 맞고 쓰러지며 내준 코너킥부터 강원엔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부상으로 한 선수가 빠진 다소 어수선한 상황에서 정인환에게 헤딩골을 헌납하며 흔들리더니, 이내 송제헌과 이승기에게까지 득점을 내줬다. 아무래도 배효성이 빠진 판국에 주장 전재호 혼자 수비 리딩으로 플랫 4의 안정감을 기하기 어려웠다는 생각, 1-1이던 스코어는 '7분' 사이에 4-1이 됐다. 두 경기 연속 4골씩 내주며 무너진 13위 강원(15점)이 11위 경남(20점), 12위 대구(15점), 13위 강원(15점), 14위 대전(11점)과의 강등권 싸움에서 올해에도 '생존왕'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되돌릴 수 없는 결과와 마주한 현재, 산산조각 난 멘탈을 어떻게 잘 정비해 나가느냐가 가장 큰 문제다. <홍의택 객원기자, 제대로 축구(http://blog.naver.com/russ1010)>
※객원기자는 이슈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위해 스포츠조선닷컴이 섭외한 파워블로거입니다. 객원기자의 기사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