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여름, 한국축구는 승부조작 망령에 사로잡혔다. 당시 한국축구의 근간이 흔들렸다. '발본색원'을 위한 뼈를 깎는 노력이 이뤄졌다. 2년여가 흘렀다. 여전히 상처의 조각은 남아있다. 최근 승부조작의 전 단계인 불법 베팅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3일 부산-경남의 K-리그 클래식 21라운드가 벌어진 부산아시아드경기장. 전반 30분경 부산 관계자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불법 베팅사이트 중계가 의심되는 인원이 있다"는 유소년 학부모의 제보였다. 구단 관계자는 재빠르게 프로축구연맹이 내려준 매뉴얼에 따랐다. 지속적인 관찰에 이어 동영상 촬영으로 증거를 확보했다. 구단 관계자의 신분이 드러나는 것을 방지했다. 경기 운영 스태프를 잠입시켰다. 이후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경호원을 대동, 신분을 밝힌 뒤 국민체육진흥법 위반으로 두 명의 중국인 유학생을 경찰관에게 인계했다. 두 명의 중국인 유학생은 경찰에 잡히자마자 한국말을 어눌하게 하면서 발뺌을 했다. 적발 시 행동수칙에 따라 이미 휴대폰의 통화목록을 전부 삭제했다. 그러나 주머니에서 A4용지 두 장 분량의 중국어로 된 베팅 행동요령서가 나오는 바람에 시인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스포츠조선의 취재 결과, 더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같은 날 열린 클래식 제주-전남전과 대구-포항전에서도 나란히 두 명씩의 불법 베팅 중계요원이 적발됐다. 대구-포항전에서는 군인 관중들 사이에 숨어있었다.
불법 베팅 관련자는 4월부터 적발되기 시작했다. 대한축구협회는 챌린저스리그(4부 리그) 7~8라운드에서 5명의 불법 베팅 관련자를 현장에서 적발했다. 협회는 2년 전부터 승부조작과 불법 베팅사이트의 밀접한 연관성을 확인한 뒤 경기국 직원들과 경호업체 직원들을 챌린저스리그 경기장에 파견, 불법 베팅 중계요원을 골라내고 있다. 협회가 색출해낸 인원만 20여명에 달한다.
K-리그 무대에선 지난달부터 속속 잡히고 있다. 7월 6일 K-리그 챌린지 광주-충주전부터 13일 성남-포항전, 31일 대전-인천전, 서울-제주전, 경남-울산전에서 관련자가 적발됐다. 서울-제주전에선 연맹의 암행감찰 효과가 나타났다.
불법 베팅 관련자들은 지난해 8월부터 일부 개정된 국민체육진흥법 제26조에 따라 현행범으로 처벌받고 있다. '불법 스포츠 도박 운영을 위해 운동경기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행위'에 해당돼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는다. 연맹 관계자는 "2011년 상처가 컸던 만큼 승부조작으로 연계될 가능성이 큰 불법 베팅부터 밀어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협회 뿐만 아니라 국민체육진흥공단, 문화체육관광부, 구단의 적극적인 협조가 이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승부조작과 불법 스포츠도박 근절에는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과 권오갑 프로축구연맹 총재의 강력한 의지가 담겨있다. 연맹은 지난주 각 구단에 불법 베팅이 의심되는 인원에 대한 제보 홍보 영상물을 제작해 전광판에 소개하라는 공문을 내려보냈다. 게다가 갈수록 교묘해지는 불법 베팅 중계 방법을 파헤치기위한 노력을 다각도로 진행 중이다. 국민체육진흥공단도 '클린스포츠통합콜센터'를 운영, 불법 스포츠도박 근절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더불어 경기 관계자들의 계좌를 파악해 특정 시간 대 특정 금액이 베팅이 되면 알려주는 이상징후 시스템도 가동 중이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경찰의 대처는 효과적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불법 베팅 중계요원을 적발해도 어떤 법을 적용해야 하는지 난감해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연맹 관계자와 통화를 한 뒤에야 사건을 인지한다고 한다.
강력한 처벌도 절실하다. 4월 협회에서 적발한 불법 베팅 중계요원들은 5월 4일 인천지법 부천지청에서 약식명령을 받아 100만원의 벌금만 냈다고 한다. 100만원만 내면, 다시 불법 베팅 중계를 할 수 있다는 현실이 개탄스럽다. 연맹과 경찰청간의 긴밀한 연계 시스템을 구축이 필요한 이유다.
부산=김진회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