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과 LG의 경기가 열린 4일 잠실구장. 취재기자실 앞 관계자석이 만원이었다. 평소 선수 가족이나 구단 관계자들이 앉는 좌석에 스피드건을 든 건장한 체구의 남성들이 가득 들어찼다. 이들은 미국 메이저리그와 일본프로야구의 스카우트들. 모두 삼성 오승환을 보기 위해 잠실구장을 찾았다.
▶오승환 보기 힘드네
미국, 일본 합쳐 총 5개 구단의 스카우트들이 4일 잠실구장을 찾았다. 메이저리그 팀은 시애틀, 피츠버그, 볼티모어였고 일본은 요미우리와 한신이었다. 이들은 삼성-LG 3연전을 모두 관전했다. 올시즌을 마치면 FA로 해외진출 자격 요건을 얻는 오승환의 투구를 지켜보기 위함이었다. 피츠버그의 스카우트는 비디오 카메라와 분석용 노트북까지 준비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다른 투수들과 달리 오승환 투구 관찰은 스카우트들에게 매우 힘든 일이 됐다. 오승환의 보직이 마무리이기 때문이다. 삼성이 앞서는, 특히 세이브 상황이 만들어져야 등판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선발투수의 경우 등판하는 날짜를 맞춰 경기장에 오면 투구하는 모습을 면밀히 관찰할 수 있지만, 마무리 투수의 경우 등판하지 않을 가능성도 커 스카우트 입장에서는 경기장에 나왔다가 헛물을 켜기 일쑤다. 지난달 5일 목동 삼성-넥센전. 오승환을 보기 위해 대거 몰렸던 스카우트들이 경기 내내 하품을 쩍쩍 하다가 오승환이 나오자 전투태세에 돌입했다는 KBS 이용철 해설위원의 유명한 어록이 탄생하기도 했다.
4일 경기도 마찬가지였다. 스카우트들은 LG가 팽팽하던 경기를 6회 4점차로 벌리자 아쉬워하는 모습이었다. 결국, LG의 7대6 승리로 경기가 마무리되자 스카우트들은 곧바로 자리를 떠났다. 3일 동안 오승환의 1⅓이닝 투구를 본 게 전부였다. 메이저리그 시카고 컵스의 스카우트는 3일 투구를 본 것으로 만족했는지 4일 경기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도 했다.
▶천하의 오승환도 긴장?
중요한 건 경기장을 찾는 해외구단 스카우트 숫자가 아니라, 오승환의 현실적인 해외진출 가능성이다. 특히 관심이 쏠리는 곳은 일본이 아닌 미국. 오승환의 구위라면 일본에서는 충분히 통한다는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일본 전문가인 KIA 선동열 감독은 "일본에서는 최고 수준의 마무리 능력을 보여줄 것"이라고 단언했다. 일본 10개의 구단 중 최고의 팀으로 인정받는 요미우리 스카우트가 한국을 찾았다는 사실 만으로도 오승환의 존재가치가 증명된다.
그렇다면 오승환의 입장에서는 더 큰 무대인 미국으로 충분히 눈을 돌릴 만 하다. 미국야구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현재 상황에 대해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 단순하게 오승환의 투구를 한 번 보려고 오는 것 같지는 않다"는 말로 미국 구단들 역시 오승환에 진지한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한국프로야구를 주름잡았던 류현진이 LA 다저스 소속으로 기대 이상의 활약을 보여주는 것도 플러스 요인이다. 선발과 마무리에서 각각 원톱으로 인정받았던 두 사람이기에 레벨로만 따지면 자연스럽게 '류현진=오승환' 등식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뜨거운 관심에 천하의 오승환도 신경이 쓰이는 것일까. 표정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오승환이 던지는 공을 보면 그도 어느정도 지금의 상황을 인식하고 있다는게 보여진다. 바로 구종 선택이다. 지난달 5일 넥센과의 경기 등판에서 가장 관심을 모았던게 변화구였다. 오승환은 당시 경기에서 평소 던지지 않았던 체인지업성 변화구를 던져 모두를 깜짝 놀래켰다. 그리고 그 경기 이후 사라졌던 그 공이 3일 LG전에서 다시 한 번 나왔다. 팀이 2-0으로 앞서던 8회 2사 1루 상황서 등판해 LG 이병규(9번)를 상대로 다시 한 번 같은 공을 던졌다. 당시에는 체인지업이라고 얘기가 나왔지만 확인 결과 검지와 중지에 공을 살짝 끼우는 스플리터였다. 단지, 공을 던지는 순간의 손의 각도가 정통 스플리터와 달라 체인지업성 변화구로 보일 수도 있었다. 어쨌든, 이 공의 의미는 평소 구종이 단조롭다는 평가를 무색케 하고 싶었던 오승환의 마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