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한증(恐韓症), 이제는 부활이 화두다.
한국과 중국 축구를 논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공한증이다. 무려 한 세대간 이어져 온 거대한 줄기였다. 한국은 1978년 12월 17일 태국에서 열린 아시안게임에서 차범근 SBS 해설위원의 결승골로 1대0 신승을 거둔 이후 2010년까지 32년간 16승11무로 단 한 차례도 패하지 않았다.
그사이 공한증이라는 단어가 탄생했다. 중국 언론의 '작품'이었다. 그들로선 아픔이었다. 1992년 1월 30일 중국은 바르셀로나올림픽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최종전에서 한국과 맞닥뜨렸다. 한국보다 승점 1점이 앞선 유리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경기 시작 9분 만에 3골을 내주며 허망하게 무너졌다. 결국 1대3으로 패해 본선 진출 티켓을 놓쳤다. 공한증의 서막이었다.
하지만 역사에서 '영원'이라는 단어는 없다. 공한증은 2010년 2월 10일 깨졌다. 일본에서 열린 동아시안컵에서 한국은 0대3으로 완패했다. 무패 행진은 27경기에서 마침표를 찍었다. 한국은 치욕적인 날이었고, 중국은 열광의 도가니였다. '32년 만에 공한증의 악몽을 털어냈다','암흑 같았던 중국 축구에 한 줄기 서광이 비쳤다'…, 중국 신문의 1면도 축구로 도배됐다.
한-중전은 유독 사건도 많았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을 앞두고 열린 친선경기에서 황선홍(포항 감독)은 중국의 거친 플레이에 최악의 시련을 맞았다. 무릎을 다쳐 월드컵 본선에서 한 경기도 뛰지 못했다. 당시 중국전은 황선홍에게나 한국 축구에 천추의 한으로 남았다.
2003년 동아시안컵에서는 이을용(강원 코치)이 중국 리이가 재활 중인 발목을 걷어차자 뒤통수를 가격, 선수들간 실랑이가 벌어졌다. 이을용은 곧바로 퇴장당했으나, 당시 불의를 바로 응징한다는 의미로 '을용타(乙容打)'라는 신조어를 낳아 화제가 됐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세월은 또 흘렀다. 2013년 동아시안컵, 홍명보호의 두 번째 상대가 다름 아닌 중국이다. 공한증이 깨진 후 3년 5개월 만의 만남이다. 24일 오후 8시 경기도 화성종합경기타운에서 휘슬이 울린다.
흐름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중국은 아시아에서 여전히 2류로 분류되고 있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예선에서 마지막 관문에 오르지도 못했다. 3차예선에서 탈락하며 최종예선에서 이름이 지워졌다. 중국 축구와 10년간 함께 호흡한 이장수 전 광저우 헝다 감독은 "중국 축구는 개개인의 기량은 뛰어나다. 하지만 조직력에서 허점이 있다. 중국 축구가 안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라고 분석했다. 반면 한국은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8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아시아 최강의 반열에 올라있다.
최근 한국과 중국은 모두 사령탑이 바뀌었다. 변화와 싸우고 있다. 그러나 현주소는 분명 닮은 듯 다르다.
물러설 수 없는 한판이다. 한국은 동아시안컵 1차전에서 호주와 득점없이 비겼고, 중국은 일본과 3대3 무승부를 기록했다. 홍 감독은 중국전에서 A대표팀 사령탑 첫 승에 도전한다. 중국은 2010년의 추억을 떠올리고 있다.
공한증은 유효할까, 영원히 잊혀질까. 주사위는 던져졌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