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힘겨운 상황에서라도 자기 몫은 해주는 투수. 그로 인해 팀 또한 위기를 극복해내고, 새로운 추진력을 얻을 수 있는 투수. 이런 일들을 해낼 수 있는 투수를 '에이스'라고 부른다. 다시 말해, 팀이 분위기 반전을 노리고 있다면 가장 먼저 에이스의 힘이 필요하다. 전반기를 아쉽게 5위로 마무리한 KIA 역시 후반기 순위 역전의 희망을 '에이스' 윤석민의 어깨에서 찾고 있다.
냉정히 말해 사실 올시즌 전반기의 윤석민에게는 '에이스'라는 타이틀이 어울리지 않았다. 최근 수년간 팀의 에이스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에이스'라는 칭호가 따라붙긴 했지만, 실제로 윤석민이 전반기에 보여준 퍼포먼스는 이런 명예로는 칭호에 부합하지 못했다. 오히려 좌완 양현종이 훨씬 팀에 안정감을 실어줬다.
지난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참가 후유증으로 어깨에 탈이 났던 윤석민은 시즌 개막 때 1군에 합류하지 못했다. 한 달 이상 재활을 하면서 새롭게 몸을 만든 윤석민은 5월초가 돼서야 겨우 1군 엔트리에 돌아올 수 있었다.
좋지 못한 몸상태로 인해 합류 시점이 늦어졌던 것은 얼마든지 수긍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윤석민은 안타깝게도 1군 복귀 후에도 계속 좋은 구위를 보여주지 못했다. 출발은 그런대로 운이 따랐다. 복귀 첫 경기였던 5월 4일 목동 넥센전에서 불펜으로 나와 운좋게 시즌 첫 승을 따낸 것.
하지만 이후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한 뒤에 윤석민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선발로 8경기에 꾸준히 나섰지만, 1승도 따내지 못한 채 3패만 떠안았다. 투수 4관왕을 차지했던 2011년에 비해 구속과 제구력이 전부 떨어진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승리 요건을 갖추고 내려온 경기가 불펜의 붕괴로 인해 무너진 적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윤석민 스스로 좋은 투구를 하지 못한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동열 감독은 윤석민에 대한 기대감을 꾸준히 갖고 있었다. 팀에서 '에이스' 투수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크고 중요한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양현종이나 김진우가 충분히 제몫을 해주고 있지만, 윤석민이 제 모습을 되찾지 못하는 한 획기적인 팀 전력의 상승을 노릴 수 없다.
다행히 윤석민은 전반기 마지막 선발 등판에서 희망의 증거를 보여줬다. 17일 광주 한화전에서 6이닝 동안 4안타 1실점으로 시즌 2승째이자 선발 첫 승을 따낸 것이다. 직구 최고구속이 150㎞까지 나오는 등 구위가 살아나면서 마운드에서 자신감을 회복한 모습을 보여준 점이 고무적이었다. 윤석민 스스로도 "오늘의 이 느낌을 잊지 않겠다"며 올해 들어 가장 만족스러운 경기였다고 밝혔다. 마치 2011년 때의 느낌이 되살아난 듯 했다.
전반기 마지막 선발 등판에서 윤석민이 이렇게 구위와 자신감을 되찾으면서 KIA는 순위 반전에 강력한 추진력을 얻게될 전망이다. 윤석민이 전반기에 2승 밖에 거두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KIA는 승률 5할 이상을 유지했다. 3위 넥센과도 2.5경기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산술적으로 생각해보면 윤석민이 시즌 후반기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지 예상할 수 있다. KIA는 후반기에 58경기를 남겨두고 있는데, 불규칙한 일정을 감안해 4명 정도의 선발을 운용할 가능성이 크다. 당연히 윤석민은 이에 포함된다. 그렇다면 최소 13~14경기에 등판하게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전반기에 윤석민은 2승 밖에 하지 못했다. 그러나 후반기에 제 몫을 해준다고 보면 적어도 7~8승 이상은 추가할 수 있다. 물론 가정이긴 해도, 이렇게 된다면 KIA도 승률을 크게 끌어올릴 수 있다. 결국 후반기 KIA가 순위 반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윤석민이 키플레이어 역할을 해줘야 하는 셈이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