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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길 나서는 홍명보, 파주 오르막길 걸으며 칼 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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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막은 전혀 없다. 숨이 차는 오르막길 뿐이다. 가다가 쉴 곳도 없다. 목표 지점에 도착했을 때의 환희를 상상하며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수 밖에 없다. 파주NFC(국가대표 트레이닝센터) 정문에서 숙소동까지 이어지는 350m의 'ㄱ자' 오르막길이다.

17일 아침 대한민국 A대표팀 감독 홍명보가 이 곳에 섰다. 2013년 동아시안컵에 나설 홍명보호 1기 소집일이었다. 홍 감독이 제일 먼저 파주에 도착했다. 정장을 갖추어 입은 채 힘차게 발을 내디뎠다. J-리거 7명을 제외한 16명의 A대표팀 선수들도 속속 파주에 도착했다. 홍 감독과 똑같았다. 모두 정문 앞에서 하차했다. 정장 상, 하의와 넥타이, 와이셔츠, 구두를 착용했다. 숙소동까지 약 350m를 걸어 올라갔다. 홍 감독이 A대표팀 소집을 앞두고 선수단에 전달한 규정대로였다.

'오르막길 걷기'는 홍 감독이 선수단에게 빼든 칼이었다. 6월 홍 감독은 최강희 감독에 이어 A대표팀을 맡았다. 자신 앞에 주어진 A대표팀은 말 그대로 만신창이였다.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서 보여준 경기력은 실망 그 자체였다. 4승2무2패(승점 14)로 우즈베키스탄과 동률을 기록했다. 골득실차에서 겨우 1골 앞섰다. 2위로 간신히 월드컵 본선에 직행했다. 이어 기성용의 SNS 파문이 터졌다. 소문으로만 떠돌던 선수들간 불신의 벽이 확인됐다. 대한축구협회가 기성용에게 엄중경고하는 선에서 문제를 일단락지었다고는 하지만 한국 축구계는 어느 때보다 어수선했다. 이 상태로 가다가는 월드컵에서 망신만 당할 터였다. 홍 감독은 '오르막길 걷기'를 통해 해이해진 정신력 다잡기에 나섰다. 내딛는 걸음마다 자신을 돌아보고 A대표팀 선수로서 사명감을 곱씹으라는 의미였다.

선수들 뿐만 아니라 홍 감독 자신에게 겨눈 칼이기도 했다. 350m의 오르막길은 홍 감독이 내년 월드컵까지 가야 할 길과 묘하게 닮아 있었다. 월드컵 개막까지는 331일 남았다.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나락으로 떨어진 팀을 끌고 위로 올라가야 한다. 쉬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홍 감독은 길을 걸으면서 마음을 다잡았다고 했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1990년 처음으로 대표선수로 뽑혔을 때가 생각났다. 그 때는 파주 NFC가 없었다. 진해 선수촌에 훈련하러 갔다. 설레면서도 긴장됐다. 버스 이동하는 5~6시간 동안 잠을 못 이루었다"고 했다. 이어 "파주에는 2001년 처음 왔다. 정문부터 숙소동까지 걸어가는 것은 처음이다. 걸어가면서 나를 돌아보고 A대표팀 감독으로 남은 시간 어떻게 보낼지에 대해 생각했다"고 말했다.

선수들도 모두 홍 감독의 메시지를 완벽하게 이해했다. 모두들 "걸으면서 마음을 다 잡을 수 있었다"고 한 목소리로 말했다. 홍 감독은 "선수들에게 사명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경기에 임하자. 너무 부담감을 갖지 말고 편안하게 하자고 주문했다"고 밝혔다. 이어 "선수들 모두 정장 입고 올라오는 것이 불편했을 것이다. 하지만 다들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선수들의 표정에서 긴장감과 간절함 그리고 해보이겠다는 의지를 느꼈다"면서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파주=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