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경엽 감독이 승부수를 걸었다. 그 시기가 묘했다. '라이벌' LG전이었다. 그 수가 통하면서 넥센은 3연전 스윕을 달성하며 두산을 꺾은 삼성과 함께 40승에 선착했다.
넥센은 최악의 6월을 보냈다. 시즌 초반부터 승승장구하면서 상위권을 지키던 넥센은 5월 들어 처음 1위에 올랐다. 디펜딩챔피언 삼성을 위협했다. 하지만 안 좋은 일이 한꺼번에 터졌다. 악재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개막 이후 3연패 한 번 없던 넥센은 6월 중순 8연패의 수렁에 빠졌다. 삼성과의 선두싸움에서 밀린 것도 모자라, 다른 중위권 팀들에게 추격을 허용했다. 급기야 지난 4일엔 NC에 2연패를 당하면서 4위로 떨어졌다.
6월 성적은 8승1무13패. 시즌 초반 미리 벌어둔 승수 5승을 까먹었다. 염경엽 감독은 잊고 싶었던 6월 성적에서 교훈을 얻었다. 잘 나가기만 하다 처음 맞은 시련, 독이 아니라 약이 됐다.
염 감독은 창원 원정에서 NC에 2연패를 당한 뒤, 선수단을 질책했다. 그리고 넥센은 거짓말처럼 LG와의 3연전에서 살아났다. 3연전 스윕으로 40승1무29패를 기록했다. 역대 40승 선착 팀(31시즌, 총 32팀)의 한국시리즈 우승 확률은 50%다. 40승 선착팀이 4위 밖으로 벗어난 적도 없었다.
▶3연전 첫 날 선발 조기강판, 승부수는 여기서 시작 됐다
3연전 내내 염 감독의 승부수가 돋보였다. 첫 경기에선 선발 밴헤켄을 2이닝 만에 내리고 불펜진을 총동원했다. 혈전 끝에 9-9 동점이 된 8회에는 2사 만루서 상대의 허를 찌르는 주루플레이로 역전에 성공했다. 2루주자 강정호가 의도적으로 리드를 길게 가져가면서 LG 마무리 봉중근에게 2루 견제를 유도했다. 이때 3루주자 유재신이 홈으로 파고 들어 결승점을 만들었다. 염 감독의 지시 아래 캠프 때부터 준비한 약속된 플레이가 정확히 이뤄졌다.
시즌을 치르다 보면, 승부를 걸어야 될 때가 오기 마련이다. 팀이 위기에 빠졌을 때, 혹은 반드시 상대를 잡아야 할 때 승부를 걸게 된다. 넥센은 이번 3연전이 그 시기였다.
조건도 좋았다. 넥센 선수들은 LG에 유독 자신감을 갖고 있다. 최근 수년간 LG의 발목을 잡아내면서 '천적'으로 자리매김했다. 선수단의 축 처진 분위기를 바꾸기엔 LG 만큼 좋은 상대도 없었다.
밴헤켄을 조기강판시킨 게 그 시작이었다. 염 감독은 7일 경기를 앞두고 "평소였다면 초반 실점에도 선발을 5회까지 끌고 갔을 것이다. 하지만 승패를 떠나 뭔가 계기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사실 3연전 첫 날부터 선발투수를 2이닝만에 강판시킨다는 건 쉬운 결정이 아니다. 남은 경기에서 마운드 운용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염 감독이 건 승부수에 LG도 넘어왔다. LG 역시 필승조를 쏟아부었다. 염 감독은 "결과를 떠나 저쪽도 투수들을 쓰게 만들었다. 물론 이정훈을 길게 던지게 해 나머지 경기에 부하를 줄이려고 했는데 그게 안돼 총동원해 투구수만 관리해줬다"고 말했다. 사실 마운드 총동원에도 염 감독의 머릿속에 3연전 마운드 운용의 밑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김병현과 강윤구 '1+1 전략', LG 라인업을 무력화시키다
7일 경기에선 그 밑그림의 연장선이 나왔다. 그리고 그 자체가 승부수였다. 염 감독은 이날 멀쩡히 던지던 선발 김병현을 2⅓이닝 만에 조기강판시켰다.
김병현이 못 던져서가 아니었다. 넥센은 다음주 롯데와의 주중 3연전을 끝으로 휴식을 취하기에 선발투수가 3명만 더 있으면 됐다. 나이트와 밴헤켄, 김영민으로 롯데전 선발진은 꾸릴 수 있다. 김병현 다음 차례였던 강윤구의 선발로테이션을 거르거나 다음주로 미루는 대신, '1+1' 작전을 쓴 것이다.
염 감독은 경기 전 "장마철 선발 운용에 좀더 신경을 써야 한다. 1+1이 나올 수도 있다. 선발투수의 불펜기용은 무리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라고 했다. 강윤구는 불펜피칭을 대신해 구원등판한 게 아니라, 선발등판 대신 구원등판한 것이다. 이는 투수에게 무리를 주지 않고, 오히려 리듬을 지키기 위한 마운드 운용이다.
LG는 이날 언더핸드스로 김병현을 맞아 라인업에 좌타자 6명을 배치했다. 워낙 왼손타자가 많은 LG지만, 최근엔 우타자의 비율을 끌어올려 상대 선발투수 유형에 적절히 대처해왔다. LG는 3회 이뤄진 갑작스런 투수교체에 또 한 번 허를 찔렸다.
넥센의 모 선수는 이번 3연전에 어떤 계기가 있었냐는 말에 "상대가 LG 잖아요"라고 짧게 답했다. 그동안의 자신감은 물론, 갚아줘야 할 것도 있었다. 지난달 중순 8연패 기간에도 결정적인 오심이 나오며 LG에 당한 3연패가 결정적이었다.
창원 원정 때만 해도 축 처져있던 덕아웃 분위기도 LG와의 3연전 내내 세리머니가 쏟아지며 뜨겁게 달아올랐다. 양팔을 뒤로 젖히는 LG의 세리머니에 맞서, 왼 팔을 하늘을 향해 들고 화살을 쏘듯 오른팔을 반대로 젖히는 새로운 세리머니도 만들었다. 3연전 첫 날 박병호가 8회 9-9 동점을 만드는 투런홈런을 날린 뒤 탄생한 세리머니다.
그만큼 넥센 선수들에겐 LG에 대한 자신감이 있다. 감독의 승부수가 먹힐 확률이 가장 높았던 것이다. 경기 후 염경엽 감독은 "이번 3연전을 통해 3연승 이상의 수확을 얻었다. 되살아난 팀 분위기와 선수들의 집중력이다"라며 웃었다. LG전에서 나온 염 감독의 승부수, 과연 이번 3연전 스윕이 남은 시즌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목동=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