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탁구의 희망' 박영숙(한국마사회)과 양하은(대한항공)이 부산아시아선수권 여자복식 동메달을 확정했다.
환상의 짝꿍이자 룸메이트다. 여자복식조가 확정된 지난 3월 이후 탁구코트 안팎에서 꼭 붙어다니는 단짝이 됐다. 파리세계선수권 초반 몇일 싱글룸을 썼다. 언니 박영숙은 동생 양하은에게 편안한 침대를 기꺼이 양보했다. 양하은은 박영숙을 친언니처럼 믿고 따랐다. 서로를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은 코트에서 그대로 나타났다. 첫 호흡을 맞춘 파리세계선수권 8강에서 세계 최강 궈예-리샤오샤조를 만났다. 4강행은 좌절됐지만 가능성을 보여줬다.
부산에서 열리는 아시아선수권은 이들에게 특별했다. 국내 복식랭킹 1위 박영숙은 단체전, 개인단식에 출전하지 않았다. 이상수와의 혼합복식, 양하은과의 여자복식에만 집중했다. 5일 혼합복식에서 중국, 일본 톱랭커조를 줄줄이 돌려세웠다. 그토록 꿈꾸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토록 꿈꾸던 금메달을 따냈지만 그날밤 박영숙은 기뻐할 수 없었다. 표정을 애써 감췄다. 후배 양하은과의 여자복식이 남아있었다. 이날 '절친' 룸메이트의 희비는 극명하게 엇갈렸다. 양하은은 초등학교때부터 엘리트 코스만 밟아온 차세대 최고 기대주다. 믿었던 양하은이 여자단식 32강전에서 인도의 '무명 에이스' 다스 안키타에게 3대4로 패했다. 예기치 않은 일격에 눈물을 펑펑 쏟았다. 탁구인들도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눈물을 쏟는 후배와 '힐링매치'를 약속했다. 금메달 하나로는 부족했다. 혼합복식에선 후배 이상수가, 여자복식에선 언니 박영숙이 게임을 리드했다.
여자복식에 임하는 눈빛은 결연했다. 이겨야 할 이유가 있었다. 복식 에이스의 자존심을 걸었다. 박영숙은 "하은이가 단식에서 부진했기 때문에, 복식에서 반드시 성적을 내서 자신감을 끌어올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4강에 이를 때까지 단 한세트도 허용하지 않았다. 32강에서 우즈베키스탄, 16강에서 베트남조를 3대0으로 가볍게 요리했다. 7일 8강전 대만의 뤼싱인-후앙신조를 또다시 3대0(11-8, 11-6, 11-9)로 돌려세웠다. 무실세트 '퍼펙트 게임'으로 동메달을 확정했다.
경기후 인터뷰에서 박영숙은 "혼합복식과 마찬가지로 메달권을 결정짓는 8강이 가장 떨렸다"고 했다. "긴장을 많이 해서 내 플레이를 잘하지 못했는데 하은이가 너무 잘해줬다"며 동생에게 공을 돌렸다.양하은은 "늘 혼자 뛰면 불안했는데, 혼자가 아니라서 든든했다. 의지가 많이 됐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무실세트 경기에 대해 "세트스코어만 보면 쉬워보이지만, 안에서는 정말 긴장됐다"고 했다.
박영숙은 혼합복식 금메달에 이어 멀티메달을 확정했다. 여자복식에서 지난 2009년 당예서, 2012년 이은희를 파트너로 여자복식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후배 양하은과 손발을 맞춘 아시아선수권에서도 어김없이 4강에 진출했다. 3연속 동메달을 확정했다. 박영숙-양하은 조는 7일 오후 3시 이번대회 여자단식 우승, 준우승자이자 세계최강 에이스 류쉬엔-딩링조와 결승진출을 다툰다. 박영숙과 양하은은 멈출 뜻이 없다. "8강에선 긴장해서 우리들의 100%를 보여주지 못했다. 중국전에선 우리 둘의 100%를 보여주도록 노력하겠다. 혼합복식에서 그랬듯 중국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 충분히 해볼 만하다. 우리의 목표는 금메달"이라며 눈빛을 빛냈다. 부산=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