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에 혼을 담으면 신물이 된다. 식당도 그렇다. 철학을 지키는 옹고집과 정성이 명가를 만든다.
충남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에 있는 한정식 전문점 '이시돌'에서 밥을 먹으려면 꽤 까다롭다. 100석 규모의 좌석이 있지만 예약은 70~80%만 받는다. '자리가 있는데 왜 손님을 받지 않느냐'고 따지면 주인은 고개숙여 "죄송하다"고만 한다. 이미 식사중인 고객이 번잡스러움을 느끼지나 않을까 해서 넘치게 손님을 받지 않는다. 먼곳에서 왔다고 해도 원칙은 원칙이다.
단체 손님 예약을 위해 '미리 음식맛 좀 보겠다'라고 하면 돌려보낸다. "누구한테 그저 그렇게 평가받고 싶은 음식이 아니다"라는 것이 주인장 염대수 사장(59)의 고집이다.
식사전 세팅 때는 아무도 방에 들어가지 못하고, 음식을 남기면 "나는 정성이 아깝고, 손님은 돈이 아깝지 않으시냐"며 꼭 한마디씩 한다. 철두철미한 원칙주의는 '한달에 3번 이상은 우리 집에 오시지 마시라'는 '거꾸로 마케팅'에서 정점을 찍는다.
너무 자주 오면 음식이 질린다는 취지지만 그럴수록 이시돌에는 손님이 차고 넘친다.
계룡산 자락에 자리를 튼지 4년여. 인근 계룡대 장성들, 수많은 명사, 기관장, 단체장, 정치인, 방송인, 대덕연구단지 박사들까지 각계 각층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홍어, 떡갈비, 황태찜, 오리고기훈제, 더덕 철판구이, 홍어애 부침 등이 이시돌 메인 메뉴다. 특별할 것 없는 남도 한정식이다. 하지만 이시돌은 화학조미료를 쓰지않고, 한발 더 나아가 파, 마늘, 생강같은 천연향신료도 제로다. 맛은 담백하다. 염 사장은 "이래야 원료 본연의 맛이 산다"고 말한다. 가격은 남도 한정식이 1만8000원, 떡갈비 정식이 1만5000원으로 부담스런 정도는 아니다.
대학에서 섬유를 전공했던 패션 전문가였던 염 사장은 88서울올림픽 패션 페스티벌 연출에 참가하기도 했다. 경제신문사에서 임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음식점과 인연이 닿은 것은 처가(부인 이경순)가 100년 가까이 된 한정식집 경영을 10여년전 물려받으면서부터. 전남 구례 지리산 자락의 유명한 한정식집을 운영하면서 스스로 음식 문화에 매료됐다. 7년전 구례 한정식집을 누나에게 맡기고 미국으로 훌쩍 떠나 수년간 뉴욕에서 문화 다양성을 경험했다. 4년여전 계룡산으로 와 다시 음식점을 열면서도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비굴한 서비스로 음식을 포장하지 않는다'는 자신만의 원칙이 손님들과 통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음식 맛에 감탄한 도올 김용옥 선생이 직접 한시를 써준 사연은 이시돌을 찾는 이들에게는 꽤 유명하다. 2년여전 주방에서 손맛을 담당하던 할머니가 남편의 병구완을 위해 휴가를 가자 보름동안 아예 음식점 문을 닫아버렸다. 수천만원의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달라진 맛을 손님에게 내놓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 일을 계기로 미국에서 외아들 유학을 뒷바라지 하던 부인이 귀국한다.
염 사장의 유일한 취미는 오픈카 드라이빙이다. 음식장사를 하면서 돈에 연연하지 않아도 월매출은 5000만원 내외. 스스로 "웬만한 회사 임원 연봉쯤은 된다"고 말한다.
음식점으로 일가를 이룬 염 사장은 요즘 뭔가 더 신나는 일을 구상 중이다.
"어려운 시기에 나라를 일군 베이비 부머들이 요즘 어깨에 힘이 쭉 빠졌어요. 저도 문제의 그 세대지요. 내가 가진 노하우, 보잘것 없는 것이라도 나누고 싶습니다. 힘을 합치다보면 없던 기운도 생기는 법이니까요."
조만간 주주개념의 한정식 공동체를 만들 참이다. 뜻이 맞는 이들을 규합해 법인 성격으로 직영 한정식을 하나 둘 늘려갈 참이다. 지점에 보낼 인원은 염 사장이 직접 트레이닝을 한 뒤 파견하게 된다. 맞춤형 교육과 운영 메뉴얼은 거의 완성단계다. 기존 음식점 프랜차이즈와 달리 공동체 성격이 강하다. 소문은 금방 퍼져 참여코자 하는 이들의 문의가 꽤 있다.
염 사장은 한정식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아기 백일부터 칠순잔치까지 모임 메뉴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한정식이다. 염 사장은 "어떨 때는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쩌면 이렇게 한정식을 좋아할까'. 물론 우리 고유음식이기도 하지만 입맛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또 한번 느끼죠. 세대를 이어가는 것이니까요"라고 말한다.
"이제는 지키고, 계승하고, 좀더 발전시킬 때입니다. 전통 명가에서 제대로된 교육을 시켜보고 싶은 것이 제 꿈입니다." 소비자인사이트/스포츠조선=박재호기자 jh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