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안방극장은 막장드라마와 일본드라마 리메이크 일색이었다. 시청률은 막장드라마, 작품성은 리메이크 드라마로 양분되는 현상을 보였다. 창작물이면서 시청률과 작품성 모두에서 성과를 거둔 작품은 MBC '구가의 서' 정도밖에 없었다. 그래서 전반적으로 푸짐한 겉보기와 달리 내용물은 빈약하다는 평이 주를 이뤘다.
그러나 하반기 드라마들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흔하디 흔한 출생의 비밀도 주춤하다. 특히 장르의 다양화가 눈에 띈다. 이번엔 막장드라마의 위세도 한풀 꺾일 것으로 보인다.
MBC '불의 여신 정이'와 KBS2 '칼과 꽃'은 사극 장르로 승부한다. 1일 첫 방송된 '불의 여신 정이'는 16세기 조선시대 도자기 제작소인 분원을 배경으로 여성 최초의 사기장인 백파선의 예술혼과 사랑을 그린다. 1회는 10.8%(닐슨코리아 전국기준), 2회는 11.4%를 기록하며 단숨에 월화극 정상에 올랐다. 첫 주에는 어린 정이(진지희)와 광해(노영학)의 첫 만남, 필생의 라이벌인 이강천(전광렬)과 유을담(이종원)의 악연 등이 속도감 있게 전개됐다. 로맨스는 '해를 품은 달', 무게감은 '대장금'이란 호평을 받았다. 이어 3일 방송된 '칼과 꽃'은 원수지간인 수양대군 딸과 김종서 아들의 사랑을 그린 '공주의 남자'를 떠올리게 한다. 고구려 영류왕의 딸 무영(김옥빈)이 아버지를 죽인 연개소문의 서자 연충(엄태웅)과 사랑에 빠진 뒤 복수와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내용이 줄거리다.
'불의 여신 정이'와 같은 날 방송을 시작한 SBS '황금의 제국'은 굵직한 사회물이다. 사회 고발성 드라마로 호평받았던 '추적자-더 체이서' 팀의 박경수 작가, 조남국 PD, 손현주, 류승수, 장신영이 고수와 이요원을 수혈받아 새롭게 선보인 작품이다. 시청률은 아직 한자릿수에 머물러 있지만, 돈을 둘러싼 권력다툼이 숨막히게 펼쳐지며 입소문을 타고 있다.
지난해 '추적자'와 함께 장르물 흥행을 이끌었던 SBS '유령'의 김은희 작가도 오는 10월 SBS '쓰리 데이즈'로 돌아온다. 김은희 작가는 '싸인'과 '유령'을 통해 한국형 수사물 장르를 개척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쓰리 데이즈' 또한 청와대 경호원을 주인공으로 한 수사물로, 대통령 실종 사건을 둘러싼 3일간의 이야기를 시간대별로 따라간다. 그래서 벌써부터 한국판 '24'라 불리고 있다. '뿌리깊은 나무'를 연출한 신경수 PD가 지휘봉을 잡았다.
장르드라마를 얘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의학드라마도 두 편이나 출격 준비 중이다. 주원, 주상욱, 문채원, 곽도원 등이 캐스팅된 KBS2 '굿 닥터'가 8월 초 첫 방송된다. 자폐증으로 10세 정도의 사회성과 인격을 가졌지만 특정 영역에 천재적 능력을 지닌 한 청년이 소아외과 의사로 거듭나는 이야기를 그린 휴먼 메디컬 드라마다. 10월 방송 예정인 MBC '메디컬 탑팀'도 천재 외과의사 역에 권상우를 캐스팅하며 한창 제작 준비 중이다. 지난해 시청률 40%를 기록하며 신드롬을 일으킨 '해를 품은 달' 김도훈 PD의 복귀작으로,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의료협진 드림팀이 탄생하기까지의 여정과 이를 둘러싼 의사들의 갈등과 사랑을 그린다.
'다모'로 잘 알려진 방학기 작가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 KBS2 '감격시대'는 오랜만에 만나는 시대극이다. 원작에선 일제 강점기인 1930년대를 배경으로 김두한, 시라소니 등 한국의 주먹들을 다뤘지만 드라마는 중국 상하이로 배경을 옮겨 가상의 인물들을 등장시킨다. '결혼 못하는 남자'와 '국가가 부른다'의 김정규 PD가 연출을 맡았다.
지상파 뿐만 아니라 케이블에서도 볼거리가 풍성하다. 뮤직드라마를 표방한 Mnet '몬스타'가 현재 방영 중이며, 7월 말에는 택연과 소이현이 주연을 맡은 고스트 멜로드라마 tvN '후아유'가 방송된다. 9월엔 tvN '응답하라 1994'가 출격한다. 고아라, 유연석, 정우, 김성균이 주인공을 맡았다. 서울의 한 하숙집에 거주하는 하숙생들의 이야기에 1994년의 농구대잔치와 서태지와 아이들 등 그 시대의 문화코드를 버무렸다. 지난해 복고 열풍을 일으킨 화제작 '응답하라 1997'의 속편으로 또 한번의 신드롬을 예고하고 있다.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