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밤, 스승과 제자가 마주 앉았다. 대화는 '핫 이슈'인 제자의 거취 문제로 흘렀다. 7월 1일이 되면, 여름 이적시장의 문이 활짝 열린다. 스승도 피할 수 없기에 부딪혔다. 그런데 제자의 뜻밖의 제안에 스승의 얼굴에 미소가 흘렀다. '사제'의 대화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매듭지어졌다.
'장신 스트라이커' 김신욱(25)이 김호곤 울산 감독(62)에게 자신의 거취를 일임했다. 김신욱은 30일 서울전(2대0 승)이 끝난 뒤 "감독님과 미팅을 했다. 이적에 달린 문제를 감독님께 맡기겠다고 했다. 나를 해외로 보내는 것은 이제 감독님의 몫"이라고 밝혔다. 이어 "거취에 대한 일임이 도리인 것 같았다. 그 동안 믿어주신 감독님이 있었기에 울산에서 잘 성장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또 "좋은 제안이 와도 감독님께서 '올시즌 나와 함께 하자'고 하시면 잔류할 생각이 있다"고 말했다.
김신욱에게 김 감독은 '은인'이나 다름없다. 김 감독은 김신욱이 프로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2009년 울산에 입단한 김신욱의 포지션을 변경시켰다. 김신욱은 과천고 시절 수비형 미드필더였고, 중앙대에선 수비수였다. 그런 그를 타깃형 스트라이커로 변신시켰다. '고육지책'이긴 했다. 당시 울산 지휘봉을 잡은 김 감독은 팀 내 공격수들의 줄부상으로 선수 운영이 어려웠다. 김 감독에게도 모험이었다. 그러나 김신욱의 공격력은 매년 향상됐다. 2009년 프로 첫 해 7골(27경기)을 넣더니 2010년 10골(33경기), 2011년 19골(41경기)을 기록했다. 지난시즌에는 13골(35경기)을 터뜨렸다. 아시아챔피언스리그에서는 무려 6골을 폭발시키며 팀 우승을 이끌었다. 결과적으로 김 감독의 결단은 성공이었다. 김신욱은 4년 만에 울산 뿐만 아니라 한국 최고의 공격수 반열에 올랐다.
김신욱은 3월 눈을 해외로 돌렸다. 그러나 이적 시나리오는 마음먹은 대로 성사되지 않았다. 관심이 겉돌았다. 독일, 벨기에, 프랑스 등 다수의 유럽 명문 팀에서 영입 문의가 있었다. 그러나 정작 손에 쥐고 협상할 공식 제안이 아무리 기다려도 도착하지 않았다. 이 때도 김 감독은 김신욱에게 믿음을 보였다. "언제든지 김신욱의 해외진출을 돕겠다"고 했다. 김신욱은 본인보다 선수의 미래를 더 생각해주는 김 감독의 배려에 반했다.
김신욱이 김 감독에게 보답할 수 있는 길은 '골' 뿐이었다. 김신욱은 30일 서울전에서 김 감독에게 선물을 안겼다. 전반 48초 만에 벼락같은 선제 결승골을 폭발시켰다. 시즌 9호골이자 최단시간 골이었다. 강호 서울의 기를 꺾는 결정타였다.
제자의 선물에 김 감독은 화답했다. 그는 "그 동안 이적에 대해 본인도, 나도 고민이 컸다. 신욱이가 팀 내 활약도가 높기 때문이다. 29일 밤 미팅을 했는데 흐뭇했다. 거취에 대해 나에게 일임했다. '잔류를 하든, 이적을 하든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해서 '고맙다'고 했다"고 전했다. 더불어 "아직 확실한 제안이 들어온 것이 없다. 좋은 조건이 있다면 보낼 생각이 있다. 시간이 있다. 내년에도 도전할 수 있는 기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신욱이가 믿음을 줬기 때문에 큰 욕심없이 구단-선수가 윈-윈할 수있다면 꼭 보내겠다"고 설명했다.
스승과 제자가 다시 한 번 서로의 믿음을 확인한 시간었다.
울산=김진회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