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어떻게 효과가 24시간을 못 가냐."
삼성 류중일 감독이 30일 대구구장에서 대뜸 덕아웃 앞을 지나가던 김상수에게 던진 말이다. 밑도 끝도없이 농담처럼 툭 던진 말이지만, 김상수는 금세 무슨 이야기인지 알아듣고는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러더니 이내 "잘 하겠습니다"라고 우렁차게 외치며 배팅 연습을 하러 뛰어나갔다. 류 감독과 김상수 사이에는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
류 감독이 말한 '효과'는 바로 '똑딱이 타자가 홈런을 친 뒤 겪는 타격감 호조 현상'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스스로의 경험에서 우려나온 이야기다. 류 감독은 "상수나 나같은 '똑딱이 타자'들이 가끔씩 홈런을 한번 치면 그 영향력이 적어도 일주일은 유지된다. 갑자기 공이 크게 보이거나 타격이 잘 되는 현상이다. 그런데 김상수는 그 효과가 24시간도 채 못 가는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김상수가 이런 핀잔을 들은 이유는 바로 28일 경기에서 생애 처음으로 멀티홈런을 날렸는데, 다음 날에는 무안타로 침묵했기 때문이다. 당시 김상수는 3회와 7회에 KIA 양현종을 상대로 각각 솔로홈런을 쳤다. 2011년과 2012년에 각각 시즌 통산 2홈런을 쳤던 김상수에게는 천지가 개벽할 만한 일이다. 김상수 스스로도 "초등학교 시절부터 따져봐도 한 경기에 2홈런을 친 것은 처음"이라고 놀라워했다.
류 감독은 김상수와 같은 '똑딱이 타자'가 이렇게 갑자기 장타를 터트리면 그 좋은 감이 최소한 며칠은 이어진다고 했다.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다. 류 감독 역시 현역 시절 한 시즌 평균 3.75개의 홈런을 쳤던 '똑딱이 타자'였다. 시즌 최다 홈런은 8개(1993, 1997)였다. 류 감독은 "나도 가끔 홈런이 나오면 타격감이 일시적으로 좋아지곤 했다"면서 "근데 상수는 왜 그럴까"라고 껄껄 웃었다.
생애 첫 멀티홈런을 날렸던 김상수는 29일에는 볼넷 1개만 얻어내고 3타수 무안타를 기록했다. 그래서 류 감독의 핀잔을 들은 것이다.
그런데 이 핀잔이 결과적으로 김상수의 감각을 다시 끌어올리는 효과로 이어졌다. 김상수는 30일 대구 KIA전에서 결승 2점 홈런을 포함해 3타수 2안타 3타점으로 맹활약했다. 잠시 사라진 듯 했던 '홈런 효과'가 하루의 공백을 거쳐 다시 살아난 것이다. 이날 4회 2점홈런으로 결승점을 올린 김상수는 "최근 왜 잘 맞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타격감은 지난달부터 계속 좋았는데, 아무래도 노림수가 잘 맞은 덕분인 것 같다"면서 "타격 코치님의 조언에 따라 준비 자세에서 방망이를 세우고, 중심을 뒤에 두면서부터 좋은 타구가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류 감독은 "김상수의 홈런이 결정적이었다"고 칭찬했다.
대구=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