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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영재' 전인지, 메이저대회 한국여자오픈 정상에 우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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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영재'가 내셔널타이틀을 먹었다.

머리가 똑똑했던 소녀는 공부에 더 관심이 많았다. 특히 수학을 좋아했다. 경시대회에 나가 대상, 본상 등 상이란 상은 다 휩쓸었다. 수학 재능자로 영재수업을 받았다. 하지만 아버지의 권유로 골프에 입문했다. 머리가 좋았던 소녀는 골프에서도 두각을 보였다. 10여년 뒤 그 소녀는 내셔널 타이틀이 걸려 있는 한국여자오픈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루키' 전인지(19·하이트진로)가 생애 첫 우승을 메이저대회에서 경험했다. 전인지는 23일 인천 송도의 잭니클라우스 골프장(파72·6422야드)에서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메이저대회인 기아자동차 제27회 한국여자오픈에서 마지막날 4라운드에서 마지막 4개 홀에서 연속 버디를 잡는 등 4타를 줄이는 맹타를 휘둘렀다. 최종합계 13언더파 275타를 적어낸 전인지는 박소연(22·하이마트)을 1타차로 제치고 정상에 올랐다. 전인지는 박소연보다 3타 뒤진 15번홀(파5)부터 버디 행진을 시작, 18번홀(파5)에서 1.7m짜리 버디 퍼트를 잡아 극적인 우승을 차지했다.

부상으로 K9 승용차와 우승 상금 1억3000만원을 받은 전인지는 시즌 상금 4위(2억4900만원)으로 뛰어 올랐다. 신인상 포인트에서도 886점을 쌓아 983점인 1위 김효주(18·롯데)와의 격차를 97점으로 좁혔다

전인지는 지난해 KLPGA 2부투어인 드림투어에서 상금 랭킹 2위를 차지해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정규투어에 뛰어든 신인이다. 올해 8개 대회에 출전, 모두 30위 이내에 드는 성적을 남긴 전인지는 특히 지난 5월 두산 매치플레이 챔피언십에서 준우승을 차지해 강한 인상을 남겼다.전인지는 1996년 김미현(은퇴), 2004년 송보배, 2005년 이지영, 2006년 신지애, 2011년 정연주에 이어 정규투어 첫해에 한국여자오픈에서 우승한 여섯 번째 선수로 이름을 올렸다.

전인지의 운명을 바꾼 건 초등학교 5학년때였다. 태권도 선수 출신인 아버지 전종진씨(54)는 둘째딸을 데리고 골프 연습장에 데려갔다. 자식중에 한명은 운동을 시켜야겠다고 마음 먹었던 아버지는 배고픈 스포츠가 아닌, 평생을 즐길 수 있는 골프를 딸에게 가르쳤다. 그러나 기대 이하였다. 생전 처음 보는 막대기(?)를 손에 쥔 전인지는 볼을 맞히기도 쉽지 않았다. 아버지는 포기하려고 했다.

그러나 전인지는 오기가 발동했다. 당시를 떠올린 전인지는 "주변 어른들의 스윙을 몰래 훔쳐보면서 5시간 넘게 쉬지 않고 쳤다. 손바닥에 물집이 잡히고, 몸을 가누기도 어려워지자 볼이 맞기 시작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 모습을 본 아버지는 어린 딸을 골프 선수로 키워야겠다고 다짐했고, 힘겨운 여정이 시작됐다.

학교에서는 반대가 심했다. 공부에 더 소질이 있자 선생님들은 수업을 빼주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는 골프 환경이 좋은 제주도로 전학을 보내버렸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좋은 코치가 있고, 연습 환경이 잘 갖춰져 있는 곳이라면 마다치 않고 찾아다녔다. 제주도 한라중학교에 입학한 전인지는 몇 개월 되지 않아 전남 보성에 있는 득량중학교로 전학을 갔다. 고등학교는 신지애(25·미래에셋)의 모교인 함평골프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아버지의 노력에 전인지는 엘리트 코스를 모두 밟으며 대형 선수로 커나갔다. 중학교 3학년 때 국가대표 상비군이 됐고, 고등학교 1학년 때 국가대표가 됐다. 그리고 골프를 시작한 지 9년 만인 지난해 꿈에 그리던 프로 무대에 당당하게 진출했다.

전인지는 "지금도 수학을 좋아하는데 골프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며 "골프는 머리보다는 몸으로 익히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인지는 현재 고려대학교에 재학중이다. 우승 소감을 말하다 눈물을 흘린 이유에 대해선 "집안 형편이 좋지 않다. 프로 골퍼로 만들려면 1년에 1억원씩 든다는데 지금까지 고생한 부모님이 생각났다. 어머니는 서산쪽에서 식당을 하시다가 다리를 다쳐 지금은 쉬고 계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신창범 기자 tigger@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