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호야, 항상 열심히 해라."
이 말이 그를 바꿔놓을 줄 몰랐다. NC 김종호는 우리 나이로 서른살에 데뷔 후 처음으로 1군 주전멤버가 됐다. 그것도 NC라는 한 팀의 부동의 리드오프다. 새로운 팀에서 연 야구인생 2막, 김종호는 스스로 가치를 입증해보이고 있다.
김종호는 전형적인 2군 유망주였다. 빠른 발을 앞세워 건국대를 졸업한 2007년 2차 4라운드 전체 25순위로 삼성에 지명됐지만, 삼성 야수진은 두터웠다. 일찌감치 군복무를 마쳤지만, 돌아와서도 1군의 벽은 높기만 했다.
2차 드래프트 때도 자신을 지명하지 않은 NC였다. 특별지명은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모두가 삼성에서 이름값 있는 좋은 선수를 데려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관심도 갖지 않던 지난해 특별지명일, 김종호는 쏟아지는 지인들의 연락에 NC행 소식을 알게 됐다.
지난해 2군에서 전준호 코치가 건넨 한 마디가 기억났다. 무더위가 시작된 6월 말, 경산에서 열린 NC와의 2군 홈경기에 앞서 전 코치에게 "항상 열심히 해라"는 말을 들었다. "네, 코치님"하고 인사만 했지만 그게 자신에 대한 '관심'이었다는 건 11월이 돼서야 알았다.
NC 김경문 감독은 김종호에게서 두산 이종욱과 비슷한 자질을 봤다. 신고선수 출신 이종욱 역시 과거 김 감독의 눈에 들어 스타로 발돋움한 케이스. 빠른 발을 가진 외야수, 잠재력 뿐인 모난 원석이었지만 다듬어주면 빛나는 보석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김 감독의 눈은 이번에도 정확했을까. 김종호는 17일 현재 타율 3할7리(212타수 65안타) 12타점 39득점 23도루를 기록중이다. 공격부문 기록순위로 가면, 김종호의 현 위치를 제대로 알 수 있다. 최다안타는 롯데 손아섭(72개)에 이은 2위, 득점 공동 4위, 그리고 도루 1위(23개)에 올라있다.
그야말로 완전히 다른 선수가 됐다. 그저 2군 유망주에 불과했던 한 선수가 9개 구단 톱타자 중 손꼽을 만한 활약을 펼치고 있다. 김 감독은 김종호에 대해 "딴 건 몰라도 발 하나는 최고다. 종욱이에게도 뒤지는 발이 아니다"라며 "(풀타임 첫 시즌인데) 정말 잘 해주고 있다. 아직은 몸이 딱딱해도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초반만 해도 김종호의 부드럽지 못한 스윙에 답답할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조금씩 입가에 미소를 짓게 만들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모습이 기특한 것이다. 이젠 김종호에게서 조금씩 여유도 느껴진다고.
하지만 김종호는 "아직 멀었다"며 손사래를 친다. 그래도 기록이 그가 수준급 1번타자로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1번타자 최고의 덕목인 '출루' 관련 기록을 살펴보자. 김종호는 출루율 4할6리로 이 부문 11위에 올라있다. 1위권을 다투는 건 아니지만, 1번타자로 범위를 좁히면 얘기는 달라진다. 김종호보다 출루율이 좋은 이들 중 1번타자는 삼성 배영섭(3위, 4할3푼7리)뿐이다. 나머진 최 정, 김태균, 나지완, 강정호 등 팀의 중심타자 몫이었다. 단순히 출루율만 보면 9개 구단 톱타자 중 2번째로 좋은 활약을 펼쳤다.
도루 부문은 아예 1위로 올라섰다. 시즌 초반만 해도 상위권을 유지하던 수준이었지만, 23도루로 경쟁을 펼치던 KIA 김선빈(21개) 두산 오재원(20개)을 제치고 단독 1위로 치고 올라갔다.
김종호는 "도루는 2경기에 1개만 하자는 생각이다. 도루 개수나 순위에 크게 신경쓰지 않으려 하지만, 팬들께서도 알려주시고 가끔씩 보게 되더라"며 웃었다. 2경기에 1개면 128경기서 64개다. 김종호는 "사실 처음 목표는 40개였다. 코치님들은 '50개는 해야지'라고 하신다"며 웃었다.
삼성에서 기회를 잡지 못할 땐, 그저 원망만 많이 했다.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나'라는 생각이 많았다. 하지만 김 감독과 NC를 만나고선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여전히 경쟁중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는 김종호, 여러모로 김 감독의 혜안이 맞아 떨어지고 있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