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악마가 우여곡절 끝에 레바논으로 향하게 됐다. 다음달 5일 새벽(한국시각)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열릴 레바논과의 2014년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서 원정응원을 나서기로 했다. 극적 레바논행 뒤에는 붉은악마의 '결연한 의지'가 있었다.
29일이었다. 반우용 붉은악마 대의원회의장은 대한축구협회로 향했다. 협회 담당자가 급히 만나자는 연락을 해왔다. 회의실에는 외교통상부 관계자도 있었다.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레바논 정세가 악화됐다"고 했다.
레바논의 시아파 무력단체인 헤즈볼라가 이웃나라 시리아 내전에 개입했다. 이 때문에 베이루트 남부 마르 미카엘 지역에 포탄이 떨어졌다. 레바논 주재 한국대사관에서 2㎞ 가량 떨어진 곳이다. 현지 주민들이 꽤 다쳤다. 외교통상부는 레바논을 여행자제지역으로 분류했다. 사실상 원정 응원을 포기해달라는 주문이었다.
반 의장으로서는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일단 시간을 조금 달라고 요청했다. 원정 응원단 실무진들과 머리를 맞댔다. 물론 안전이 최우선이었다. 하지만 이번 원정을 위해 준비를 해온 회원들의 바람을 저버릴 수는 없었다. 원정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몇 달간 아르바이트를 해온 회원도 있었다. 또 점심값을 아끼면서 차곡차곡 모은 회원도 있었다. 레바논 현지 교민들과 함께하는 응원도 기획했다.
30일 반 의장은 다시 협회로 향했다.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여전했다. 만에 하나 있을 수도 있는 테러를 걱정했다. 반 의장은 '이동 동선 최소화' 카드를 내밀었다. 원정 응원단은 현지에 오후 1시경 도착할 예정이다. 경기 시작 시간은 오후 8시 30분이다. 약 7시간 가까이의 여유가 있다. 원래는 현지 문화 체험 시간과 식사 등의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었다. 반 의장은 "이 모든 것을 포기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6~7시간 동안 공항에 머물겠다는 이야기였다. 식사 역시 도시락으로 대체하겠다고 했다. 괜히 움직였다가 테러의 표적이 되느니 안전한 공항에서 기다리는 쪽이 낫다고 판단했다.
반 의장은 "우리는 A대표팀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레바논으로 향한다. 그렇다고 해서 섣부른 행동으로 대표팀과 대한민국에 걱정을 끼쳐서는 안된다. 다소 불편함은 있겠지만 안전한 곳에서 대기하다가 경기장에서 모든 에너지를 쏟아내겠다"고 말했다. 반 의장의 결연함에 외교통상부 관계자도 고개를 끄덕였다. 원정 응원단이 레바논으로 향하는 것을 허락했다.
물론 아직까지 변수는 남아있다. 레바논의 상황이 더욱 악화될 경우에는 원정응원은 바로 취소될 수 있다. 반 의장도 여기에 동의했다. 반 의장은 "베이루트로 향하기 전까지 현지 상황을 계속 살피겠다. 아무런 일이 없기를 바란다. 120명의 원정 응원단이 가서 선수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다"고 했다. 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