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전남 드래곤즈의 미드필더 이현승(25)이 경남FC와의 원정경기에서 전반 40분, 시즌 첫골을 터뜨렸다. 3연속 무승부를 기록한 전남에겐 5월의 첫 승리가 간절했다. 가장 필요한 순간, 한결같이 믿어온 에이스의 발끝이 살아났다. 지난해 4월 광주전에서 선제골을 넣은 이후 무려 1년여만에 골맛을 봤다. 1대0 승리를 이끈 선제결승골이었다. '광양루니' 이종호(21)의 도움이 결정적이었다. 페널티박스 안에서 상대 수비수를 등진 채 감각적인 힐패스를 밀어줬다. 이현승도 "최고였죠!"라는 말로 고마움을 표했다. "경기 후 이종호와 무슨 이야기를 나눴냐"는 질문엔 뜻밖의 답이 돌아왔다. "종호가 기억을 못하던데요."
이종호에게 직접 확인했다. "보산치치의 프리킥 이후가 기억이 안나네요." 경남전 후반 38분 보산치치의 트레이드마크인 '광속 프리킥'이 이종호의 머리를 강타했다. 보산치치의 강렬한 대포알 슈팅에 정통으로 맞은 직후 그라운드에 쓰러졌다. 충격으로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의료용 카트를 타고 잠시 그라운드 밖으로 이동한 이종호는 잠시 후 의연하게 되돌아왔다. 5분 정도 경기를 더 뛴 후 인저리타임인 후반 46분 전현철과 교체됐다. 하이파이브를 한 후 엉덩이를 두드리며, 힘을 실어줬다. 1대0 승리로 경기를 마무리한 후 원정 온 전남 서포터석을 찾아가 깍듯이 감사인사도 했다.
문제는 물흐르듯 자연스러웠던 이 모든 상황이 이종호의 기억속에 없다는 것이다. "프리킥까지만 기억이 나고, 그 이후 라커룸에서 샤워할 때까지 그 사이가 기억이 안나요." 전형적인 뇌진탕 증세, 외상후 단기기억실조증이다. 2011년 8월 삿포로에서 열린 한일전에서 수비수 박원재(전북)가 엔도의 슈팅에 맞은 후 겪은 것과 동일한 증세다. 축구선수들이 종종 겪게 되는 뇌진탕은 때론 심각한 후유증을 낳는다. 즉각적인 교체, 종합적인 진단과 사후 확인도 필요하다. 누가 봐도 아찔한 순간이었다. "축구공으로 전신에 안맞아본 곳이 없는데, 이렇게 세게 맞긴 난생 처음"이라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행히 후유증은 없다. "괜찮아요. 어지럽거나 메스껍지도 않고, 외상도 없고, 아프지도 않고, 머리가 단단한지 아무렇지도 않네요"라며 웃었다.
이날 귀중한 원정 승리를 이끈 골 장면의 기억은 곧 되살아났다. "수비수를 스크리닝하면서 볼을 내주는 건 전북-포항전 이동국형의 플레이를 보며 따라 연습한 것"이라고 했다. 수십번 비디오를 보며, 남몰래 연습했던 장면이 실전에서 그대로 나왔다. '하석주호의 원톱' 이종호는 노력파다. 광양제철고 시절 최고의 골잡이로 이름을 떨쳤지만, 프로 무대에선 아직 미완의 대기다. 3년차인 올해 이종호는 달라졌다. 초반 페이스가 그 어느해보다 좋다. 8경기에서 1골3도움을 기록중이다. 팀내 최다 도움이다. K-리그 최고의 타깃맨 이동국(전북)과 데얀(서울)의 플레이를 틈만 나면 모니터링한다. 개인훈련 때마다 동료들과 미니게임을 하며 비디오로 본 내용을 복기한다. "제가 가진 장점에 선배들의 장점을 추가하는 거죠. 훌륭한 선수들을 따라 열심히 연습하다 보면, 결국 닮아가게 되겠죠?"
"보산치치의 프리킥 후 혹시 공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긴 건 아니냐"는 기우엔 대번 고개를 가로저었다. "프리킥 전에 보산치치와 눈이 몇번 마주쳤어요. 공이 내쪽으로 올 것같은 느낌이 들었죠. 소문대로 세긴 세더라고요"고 씩씩하게 농담했다. "똑같은 상황이 와도 전 절대 피하지 않을 거예요. 온몸으로 맞서서 또 막아내고, 팀을 위해 희생해야죠"라며 웃었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