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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본즈' 김상현, 문학구장 약속의 땅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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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보다 도구를 이용하는 스포츠. 아무래도 정확성은 떨어지기 마련이다. 신체 일부인 팔 다리만큼 마음 먹은대로 팍팍 움직여지지는 않는다. 그래서일까. 호모 파베르적 특성과 관련도가 높은 스포츠일 수록 '징크스'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진다. 야구의 배팅도 그 범주 중 하나다. 배트라는 도구를 사용하는 타자들. 그들에게 감과 느낌은 중요하다. 특정 야구장에 대한 호불호도 마찬가지. 왠지 마음이 편해지는 야구장이 있다.

SK맨이 된 김상현(33)에게 인천 문학구장이 꼭 그렇다. 왠지 그곳에 서면 엔돌핀이 솟구친다. 당연히 문학구장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일부 팬들은 그를 '문학 본즈(문학구장에서 배리 본즈처럼 홈런을 펑펑 쏘아올린다는 의미)'이라 부를 정도. 트레이드 영입 선수는 해당팀에 강했던 케이스가 많다. 천적을 내 편으로 만들면서 이중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에 그 효과가 두배다. SK가 헛헛했던 오른손 거포 보완 카드로 김상현을 점찍은 이유도 그와 무관치 않다. 그동안 SK전, 특히 문학구장에서 보여준 강렬한(그동안은 쓰라렸던) 기억의 잔상도 한 역할 했음이 분명하다.

올시즌도 김상현은 문학에서 기분 좋은 출발을 했다. 지난달 21일 SK전에서 5회 선발 세든으로부터 큼직한 125m짜리 대형 홈런(투런)을 쏘아올렸다. 마치 SK 이적을 암시하는듯한 시즌 마수걸이 홈런포가 바로 보름 후 홈 그라운드가 될 운명의 문학구장에서 터졌다.

야구 인생의 절정기였던 지난 2009년. 그해도 문학구장은 약속의 땅이었다. 문학구장 10경기에서 0.341의 타율에 홈런을 무려 6방이나 쏘아올렸다. 2경기 꼴에 홈런 1개 이상씩 꼬박꼬박 날린 셈. 무려 5배 이상 많았던 54경기를 소화한 광주 홈경기에서 11홈런. 그해 문학구장에서 얼마나 많은 홈런을 기록했는지를 알 수 있다.

김상현 본인도 이 사실을 잘 안다. 고향 팀 KIA를 두번이나 떠나게 된 속 쓰린 현실의 늪 위에 살포시 떠오른 위안의 연꽃 잎 중 하나. "문학은 좋은 기억이 있는 곳이에요. 그곳에서 야구가 잘 됐었거든요. 물론 SK 투수를 상대로 한 성적이었고, 홈구장으로 계속 사용하면 어떨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2009년 당시 김상현이 문학에서 홈런을 빼앗았던 SK 투수들이 과연 만만했을까. 아니다. 오히려 모두 수준급이었다. 현재 삼성에서 불펜 코치를 맡고 있는 카도쿠라에게 3개의 홈런을 날렸다. 그 다음은 공교롭게도 운명의 트레이드 맞상대 송은범이다. 2개의 홈런을 빼앗았다. 그와의 승부는 여전히 유효하다. 오히려 앞으로는 세간의 폭발적 관심 속에 서로 더 의식하고 집중할 흥미로운 대결이다. 나머지 1홈런은 채병용에게서 빼앗았다.

문학에서 힘을 냈던 김상현. SK 투수에게 강했던 점도 무시할 수 없지만 그의 '무대 체질'에도 주목해야 한다. 김상현은 KIA로 이적한 2009년 이후 관중석이 큰 규모의 구장을 선호했다. 지금도 스스로 "잠실도 가끔 가면 잘 되는 것 같다"고 털어놓는다. 그의 말처럼 문학 뿐 아니라 잠실과 사직에서도 평균 이상의 활약을 했다. 오히려 투수력이 약한 편이었던 한화의 홈 그라운드 대전에서 약했다. 지난해까지 펜스가 낮고 짧아 홈런 공장이던 이 곳에서 그는 오히려 제대로 된 손 맛을 거의 보지 못했다. 2009년부터 단 3홈런. 원정 구장 중 가장 적은 수치다.

좋은 기억을 품고 출발한 새로운 홈 그라운드 문학구장. 그곳은 진정 김상현에게 약속의 땅이 될 수 있을까. 이번 트레이드의 성패를 좌우할 요소 중 하나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