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경(24·카디프시티)의 출발은 측면이었다.
측면 공격수로 종횡무진 활약하면서 두각을 드러냈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 본선 최종명단 합류를 통해 가능성을 인정 받았다. 이후 조광래호를 거쳐 최강희호까지 김보경의 자리는 '측면'이었다. 빠른 발을 앞세운 돌파로 2선 공격까지 가능한 그에게 '제2의 박지성'이라는 칭호가 붙었다.
꿈에 그리던 잉글랜드 무대 진출에서도 측면에서 성공을 꿈꿨다. 현실의 벽은 높았다. 거칠기로 소문난 챔피언십(2부리그)의 색깔은 달랐다. 빠른 발은 팀 주전경쟁에서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다. 백전노장 크레이그 벨라미(34)가 팀에 가세하면서 설 자리는 더욱 좁아졌다. 말키 맥케이 카디프 감독은 변화를 택했다. 김보경을 측면에서 중앙으로 이동시켰다. 충분한 재능을 가진 김보경을 제대로 활용해 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수는 적중했다. 김보경은 중앙으로 이동한 뒤 비로소 카디프 공격에 녹아들었다. 카디프는 챔피언십 1위로 다음 시즌 프리미어리그(EPL) 승격을 일궈냈고, 김보경은 한 축 역할을 담당했다. 반세기 만의 승격에 카디프시티 스타디움 뿐만 아니라 시내 전체가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27일(한국시각) 카디프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볼턴 원더러스와의 2012~2013시즌 챔피언십 45라운드는 달아오른 카디프의 분위기를 직접 느껴볼 만한 자리였다. 경기 전부터 이미 축제 분위기에 휩싸인 카디프 팬들에게 승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1대1 무승부에 그쳤으나, 선수나 팬 모두 여유가 넘쳤다. 경기 후 취재진과 만난 김보경의 표정도 마찬가지 였다. 본심을 드러냈다. "포지션 변경 이후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졌다. 앞으로도 중앙에서 뛰는 게 더 좋을 것 같다." 측면에서 중앙으로 이동하면서 비로소 자리를 잡은 것에 대한 확신이 담겨 있었다. 김보경은 "시즌 처음에는 (팀에) 적응을 제대로 못했고, 포지션 경쟁 면에서도 힘든 점이 많았다"면서 "하지만 최근 포지션을 이동하면서 많은 것을 보여줄 수 있었다. 정신적인 면에서도 차이가 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현 구도상 김보경은 다음 시즌 EPL에서도 카디프의 중앙 미드필더 요원으로 활약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A대표팀 경쟁구도의 변화를 뜻한다. 그동안 측면 공격수 1~2번째 옵션으로 꼽혀왔으나, 중앙은 사정이 다르다. 기성용(스완지시티) 구자철(아우크스부르크) 하대성(FC서울) 등 경쟁자가 즐비하다. 공격에 전념할 수 있었던 카디프와 다르다. 이미 공수 역할 분담이 확실하다. 냉정하게 보면 김보경의 현재 능력으로 A대표팀 중원을 차지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6월에 펼쳐질 2014년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3연전에서도 자리를 잡기 어려울 전망이다. 이미 측면보다 중앙에 익숙해진 김보경을 다시 측면으로 보내기도 애매하다. 최강희 A대표팀 감독이 다른 선택을 할 것으로 보이는 이유다. 챔피언십보다 수준이 한 단계 높은 EPL에서 어느 정도 실력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향후 A대표팀 승선 구도가 바뀌게 될 것으로 보인다. 카디프(영국)=이종원 통신원, 박상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