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석 감독이 19번째 연출작 '전설의 주먹'으로 관객들을 만났다.
한국 최초로 천만 영화 시대를 연 강우석 감독의 '전설의 주먹'은 학창시절을 주름 잡은 파이터들이 중년이 돼 지상 최대 파이트쇼 '전설의 주먹'에서 최강을 가린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복싱 챔피언의 꿈을 접고 국수집 사장이 돼 홀로 딸을 키우는 임덕규(황정민), 카리스마 하나로 일대를 평정했지만 가족을 위해 자존심을 버리고 대기업 홍보 부장이 된 이상훈(유준상), 남서울고 미친개로 불렸으나 삼류 건달로 전락한 신재석(윤제문) 등 세 남자의 사랑과 우정을 액션 장르 안에 풀어냈다. 영화는 7080세대의 향수를 자극하며 박스오피스 2위를 차지, 흥행몰이 중이다.
▶ 감 떨어지는 거, 두렵다
'투캅스' '킬러들의 수다' '공공의 적' 등 수많은 히트작을 만들어내며 한국 영화사를 이끈 장본인이다. 그러나 '이끼' '글러브' 등에서 흥행 신화가 주춤했던 것도 사실. 일각에서는 '강우석 감독도 감이 떨어진 게 아니냐'는 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감독은 "감 떨어지는 게 두렵지 않다고는 얘기하지 못한다. 하지만 고민은 하지 않는다. 영화 촬영 및 후반 작업하는 시간이 아니면 새로운 영화가 개봉할 때마다 다 본다. 그렇게 많은 영화를 보는데 감이 떨어질리가 있나. 나이가 들면 올드해질 수는 있겠지만, 그것도 공부를 안해 그런거다. 몸이 늙고 나이가 들 뿐이지 관객들과 같은 영화와 책을 보는데 생각이 늙을 순 없다. 지금 관객들에게 '올드하다'는 소리를 들으면 그만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이어 "최선을 다해 찍은 영화를 왜 선택하지 않는지 속상한 정도의 개념이지 개인적으로 관객 동원에 목숨 걸진 않는다. 사람들은 내가 흥행에 집착하는 줄 아는데 최선을 다할 뿐"이라며 쿨한 반응을 보였다.
1989년 영화 '달콤한 신부들' 이후 20년 넘게 한국 영화계의 정상에 군림하고 있는 관록의 거장에게 흥행 성적보다 무서운 것은 바로 영화 그 자체. "알면 알수록 영화 작업 자체가 무섭다. 특히 '이끼'를 만들 땐 '왜 영화 한 편 찍는게 이렇게 힘든가' 조바심나고 마음 고생도 심했다. 그렇게 해서 성숙되는 게 아닌가 싶다"는 설명이다.
관객의 기대치 역시 부담스러운 요소다. 감독은 "내가 만들었다고 하면 엄청난 기대치를 갖는다. 점점 더 험하고 나은 걸 요구한다. '실미도' '공공의 적'보다 좋아야 한다고 하니까…. 이전의 내 영화를 이겨야 하니까 힘든거다. 늘 기본은 해야한다는 게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 할리우드 진출? No!
최근 김지운 박찬욱 봉준호 등 후배 감독들의 할리우드 진출기가 이어지고 있다. 이미 '실미도' 등으로 해외에서도 인기를 끌었던 경험이 있는 만큼, 해외 진출 트렌드를 따를 생각은 없을까? 강 감독은 "꾸준히 국내파로 만족하려 한다. 나는 우리 관객을 상대로 상업영화를 찍는 사람이다. 또 아시아권에서는 동일 감정으로 영화가 보여져 중국이나 일본 등에는 내 영화가 많이 소개됐다. 아시아도 충분히 넓고 한국 배우들도 워낙 좋은데 뭐하러 해외에서 영화를 찍나. 김기덕이 한국 배우와 영화를 찍어 해외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았고, 싸이도 한국에서 터지니까 (해외에서도) 터지는 것처럼 우리 컨텐츠로 터트려서 가져가는 거다"고 일축했다.
▶ 관객 사랑, 영화로 보답할 것
강우석 감독은 신작 '전설의 주먹'에 강한 자부심을 보였다. 그는 "이번 영화는 옛날 내 스타일로 찍어야 해서 새로운 기분으로 새로운 배우들과 하고 싶었다. 힘든 영화를 많이 찍어서인지 영화 작업이 너무 지치더라. 지나치게 머리를 쓰고 기승전결을 만들어야 한다는 거에 대한 부담이 심했던 것 같다. 쉽게 소통할 수 있는, 옛날 영화가 그리웠다. 나한테는 힐링 개념이었다"고 말했다.
강우석 감독은 강우석 프로덕션(1993년)과 시네마서비스(1995년)을 설립, 제작 투자 배급자로도 활약했다. 대형 자본의 난입 속에 개인 영화사를 지켜간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는 "힘들었지만 (회사를) 꾸려갈 만큼 흥행은 됐다. 나는 관객들에게 굉장히 많은 사랑을 받은 감독이자 제작자다. 보답하는 길은 영화를 잘 만드는 것밖에 없다"며 웃었다. 이어 "힐링시키진 못하더라도 관객에게 즐거움을 줘야한다는 사명감은 느낀다. 언제까지 할진 모르겠지만 관객이 영화를 봐주는 한은 끝끝내 작품을 해야할 것 같은 의무감도 생기고 그런 감정이 항상 남아있다"고 전했다.
백지은 기자 silk781220@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