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기 꺼놨어요."
2004년 시즌이 끝나고 삼성 라이온즈 사령탑에서 물러난 후 지난해 말 한화 지휘봉을 잡은 김응용 감독(72). 삼성 구단 사장을 거쳐 9시즌 만에 현장에 복귀한 김 감독이 예전과는 여러모로 달라졌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특유의 묵직한 존재감은 여전한데, 많이 부드러워진 것 같다는 게 김성한 수석코치, 구단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물론, 해태 타이거즈 시절 선수들의 플레이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팀 분위기가 흐트러졌다고 판단되면 덕아웃 의자를 집어던지는 등 과격한(?) 모습도 사라졌다. 경기중에 덕아웃에서도 별다른 움직임이 없이 경기에 집중한다. 그렇다고 자리만 지키고 있는 것은 아니다. 김 감독은 "나이가 먹어서 그런지 의자에만 앉아 있으면 몸에 안 좋은 것 같다. 그래서 자주 서서 경기를 본다"고 했다.
개막 13연패에 빠져 마음고생이 심했던 김 감독. 그는 한동안 경기전에 덕아웃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사실 팀이 워낙 부진해 이유를 묻는 반복되는 질문에 대답을 하는 것도 곤욕스러웠을 것이다. 그랬던 김 감독이 17일 NC전을 앞두고 대전구장 1루쪽 홈팀 덕아웃에 나왔다. 연패를 끊으면 취재진과 만나겠다는 했던 약속대로다. 한화는 16일 NC를 6대4로 꺾고 악몽같은 연패의 사슬을 끊었다.
김 감독은 16일 경기가 끝난 뒤 휴대전화를 꺼 놓았다고 했다. 어렵게 거둔 시즌 첫 승을 축하하는 전화가 빗발칠 게 뻔한데, 전화를 받는 게 쑥스러웠던 모양이다. 취재진이 '경기가 끝난 뒤 정말 울었냐'는 질문에 "난 본래 잘 울지 않는다. 연기로 울 수는 있다. 정말 이런 연패는 처음이었다"며 슬쩍 한발을 뺐다.
시즌 첫 승을 거둔 16일 NC전 1회초 수비 때 한화는 좌익수 정현석의 실책으로 곤욕을 치렀다. 2사 2루에서 NC 권희동이 때린 뜬공을 정현석이 잡았다가 놓친 것이다. 심판은 포구에 실패한 것으로 판단했고, 2루 주자는 홈을 밟았다. 초반 흐름을 NC에 넘겨준 플레이었다. NC는 1회에만 3득점했다. 그러나 보기에 따라 공을 잡은 후 넥스트 동작으로도 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당시 김성한 수석코치가 주심에게 어필을 했고, 네명이 심판이 모두 보여 상의를 한 뒤 공을 놓친 것으로 결론을 냈다.
그런데 김 감독은 "집에 가서 TV 중계 화면을 봤는데, 심판이 맞게 본 것 같다"고 했다. 다소 싱거운 정리다.
3-4로 뒤지던 5회말에는 김성한 수석코치가 NC 선발투수 에릭의 투구폼을 놓고 주심에게 어필을 했다. 다리를 내딛으면서 무릎이 나가는 타이밍이 일정하지 않아 타자들이 혼란을 느낄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그러나 구심은 문제될 게 없다고 판단했다. 에릭은 10일 LG전 때도 비슷한 동작 때문에 구심으로부터 주의를 받았다.
에릭의 투구폼에 대해 김 감독은 "그 정도면 괜찮은 것 같다"고 명쾌하게 결론을 냈다. 어필에 나섰던 김성한 수석코치가 이 말을 들었다면, 조금 머쓱했을 것 같다. 김성한 수석코치가 김 감독과 상의없이 그라운드에 나갔을 리도 없다.
김 감독은 왜 이 두 가지 상황에 대해 심판의 손을 들어준 것일까. 구단 사장까지 지낸 원로 야구인으로서 모든 걸 안고 가야한다고 생각한 건 아닐까. 어쩌면 심판 판정을 놓고 뒷말을 하는 게 팀에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대전=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