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베리아 반도, 그중 스페인을 열차로 여행하는 것 또한 흥미롭다. 여정은 15~16세기 대항해시대의 절대강자 스페인의 영광을 더듬어 보는 시간이다. 코발트빛 하늘과 황금색으로 빛나는 건축물이 멋진 조화를 이룬 수도 마드리드에서는 광장문화의 진수를 맛볼 수가 있고, 스페인의 천재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의 예술혼이 서린 바르셀로나 또한 '태양의 나라' 스페인의 개성과 열정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열차의 낯선 흔들림을 리듬삼아 차창 밖 풍광에 몰입하는 것도 열차기행이 가져다주는 또 다른 매력이다. 특히 마드리드~바르셀로나 구간은 끊임없는 구릉과 평원이 펼쳐진 이색지대로, 남부유럽의 분위기는 물론, 사막화가 진행 중인 북아프리카, 미국 네바다주의 풍광과도 오버랩 된다. 마침 이베리아반도는 대서양-지중해와 연접한 유럽대륙 남단에 자리하고 있어 이즈음 따스한 봄기운을 받으며 여행을 즐기기에 더할 나위 없다. 마드리드-바르셀로나(스페인)=글·사진 김형우 여행전문 기자 hwkim@sportschosun.com
◆이베리아반도의 중심 '마드리드'
이베리아 반도를 거쳐 남부 유럽 여행을 기획한다면 포르투갈 리스본이 그 출발점이 된다. 여행객들은 대체로 야간열차에 몸을 싣는다. 리스본의 산타 아폴로니아 역을 출발한 국제열차 '루지타니아'는 밤을 달려 이튿날 아침 스페인 마드리드 에 도착한다.
밤새 국경을 넘어 스페인 평원을 힘차게 달려온 열차 앞에는 새로운 풍광이 펼쳐진다. 시야에 들어오는 거대한 빌딩군락. 포르투갈과는 또 다른 감흥이다. 동틀 무렵 열차는 마드리드 외곽 차마르틴역에 도착한다. 마드리드 시내 투어를 위해서는 그 출발점인 아토차역으로 향해야 한다. 우리의 서울역에 해당되는 곳으로, 역사 주변은 무장 군인들의 경비가 삼엄하다. 수년 전 바스크 분리족의 열차 테러사건이후 경비를 강화한 탓이다. 아토차역은 천정이 아주 높다. 역사에 실내 보태니컬 가든이 들어서 있기 때문이다. 차를 갈아타는 열차 이용객에게는 더없는 쾌적한 휴식 공간이 되는 셈이다.
이른 봄 마드리드의 아침 공기는 쌀쌀하다. 날씨는 쨍하고 맑지만 내륙지방 특유의 큰 일교차 때문이다. 하지만 낮 시간의 따사로운 햇살은 몸과 마음을 더없이 푸근하게 해준다. 마드리드는 스페인의 어제와 오늘을 온전하게 담아낸 공간이다. 마드리드 시내를 거닐수록 실감할 수 있는 게 스페인의 과거 영화다. 포르투갈과는 또 다른 느낌, 런던도 파리도 로마도 아닌 것이 마치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와도 비슷한 그런 고풍스런 세련미와 웅장함을 갖췄다. 코발트빛 하늘과 황금색으로 빛나는 건축물, 그리고 세기의 미술 작품 등은 여행자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하다.
▶마드리드에서 맛보는 광장문화
마드리드는 광장문화가 잘 발달된 도시다. 시내 곳곳 주요 지점에 크고 작은 광장이 들어서 있다. 광장에는 저마다 개성 넘치는 스토리와 문화가 살아 숨 쉰다. 아울러 광장과 광장을 수많은 골목이 연결한다. 그 골목에는 레스토랑, 선술집인 '메종', 기념품가게, 재래시장 등이 펼쳐져 있다. 따라서 광장순례 또한 마드리드를 효과적으로 여행하는 방법 중 하나가 된다.
마드리드의 대표적 광장은 '태양의 문'이라는 뜻의 '푸에르타 델 솔'이다. 시내 중심가에 자리한 광장은 여행자들은 물론 마드리드 시민들이 즐겨 찾는 명소다. 매년 12월 31일이면 인근 성당에서 들려오는 새해 첫 종소리를 듣기 위해 수많은 이들이 모여 든다. 솔 광장 한쪽에 세워져 있는 곰 조각상은 마드리드의 상징쯤으로 방문객들의 포토 존이 된다. 아울러 광장에는 마드리드 기점 국도의 시발점을 알리는 도로원표도 세워져 있다.
푸에르타 델 솔 광장을 빠져 나와 중세 유럽 정취가 물씬 풍기는 골목길을 따라 잠시 걷다 보면 '마요르 광장'이 나선다. 4층짜리 건물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스페인의 전형적인 광장이다.
마요르 광장 곳곳에서 펼쳐지는 거리의 악사와 무명 예술가들의 즉석 퍼포먼스도 큰 볼거리가 된다. 하지만 이들에게 함부로 카메라 들이댔다가는 집요하게 '대가'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광장 시계탑은 매년 새해맞이 카운트다운이 이뤄지고 있는데, 예전 이곳 광장에서는 종교재판, 화형식, 투우 등이 열리기도 했다.
마요르 광장 인근 골목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됐다는 레스토랑 '보틴'이 있다. 1725년부터 영업을 시작한 이곳은 헤밍웨이의 단골집으로도 유명하다.
마요르 광장 북쪽 리베라 데 쿠르티도레스 거리 근처에서 열리는 벼룩시장 또한 마드리드의 명물이다. 매주 일요일과 공휴일 이른 아침부터 오후 2시까지 장이 서는데, 골동품과 재활용품, 신제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물건들이 쏟아져 나온다. 때문에 시장구경은 마드리드 사람들의 생활상을 접할 수 있는 살가운 문화기행이 되는 셈이다.
마드리드의 중심 시벨레스 광장도 빼놓을 수가 없다. 광장 인근에는 의미 있는 건축물 하나가 있다. 고딕양식의 웅장한 건물이 그것인데, 본래 우체국(전화국)이었던 것을 근자에 시민을 위한 커뮤니케이션 센터로 내줬다. 가장 멋진 공간을 시민들에게 내줄 수 있다는 발상 하나만으로도 정부와 국민사이 '소통'이 절로 될 듯싶었다. 웅장한 외관 이상으로 실내 또한 우아하다. 안델루시아 지방의 타일로 내벽을 꾸며 놓았는가 하면, 가구와 소품은 한결 같이 세련미가 넘쳐흐른다. 광장 주변에는 시청을 비롯해 스페인 은행, 리나레스궁 등 마드리드의 중요한 건축물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밖에도 돈키호테 동상이 있는 스페인광장, 마드리드 왕궁으로 향하는 오리엔트 광장도 만남의 장소로 유명하다.
광장 투어 도중 만나는 산 미구엘 마켓은 프랑스 전 대통령 사르코지 등 명사들이 즐겨 찾은 곳으로 유명하다. 다양한 미식거리와 함께 와인을 즐기는 스페인 사람들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개성과 열정이 넘치는 도시 '바르셀로나'
마드리드에서 바르셀로나까지는 스페인 초고속 '아베(AVE)' 열차를 이용한다. 최고 시속 300km로 마드리드에서 바르셀로나까지는 2시간 38분이 소요된다. 차창 밖의 풍경은 다분히 이국적이다. 모래와 바위가 뒤섞인 붉은 황무지에 간간히 관목 숲이 펼쳐지고, 벌거숭이 구릉과 야산이 이어진다.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는 북아프리카, 미국 네바다주의 한 곳을 달리는 듯 한 느낌이다. 이후 광활한 올리브 밭과 과수원, 멀리 산자락 아래 아기자기한 옛 마을들이 펼쳐지는가 하면 지중해 연안의 광활한 습지도 나타난다.
바르셀로나의 첫 느낌은 세련미다. 곳곳에 예술가의 혼이 깃든 걸작이 즐비하다. 예술작품은 차치하고라도 바르셀로나 역사 위층에 자리한 호텔 입지부터도 인상적이다. 고속열차에서 내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면 호텔 프런트다. 여행자의 동선을 줄일 수 있는 효율적 입지로, 일본의 역주변 관광호텔 입지를 한 차원 넘어선 경우다. 특히 세련된 인테리어에 다양한 크기의 회의시설까지 갖추고 있으니 과연 세계적 관광도시의 인프라 답다.
▶가우디의 명작 탐방
바르셀로나는 '가우디의 도시'라 할 정도로 그의 예술혼이 깃든 건축물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필생의 역작이자 현대 건축사에 빛나는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비롯해 '카사 밀라', '구엘 공원', '카사 바트요' 등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수많은 건축물이 바르셀로나 시내에 산재해 있다. 실제 바르셀로나를 찾는 상당수의 외래 관광객은 가우디 작품 감상을 제일 목표로 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안토니오 가우디는 바르셀로나 옛 고유문화의 저력을 보여주는 '카탈란 모더니즘'의 대표주자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걸쳐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일어났던 이 예술 운동의 중심에는 가우디가 있었고, 그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구엘 공원', '카사 밀라'등 9개의 역작을 바르셀로나에 남겼다.
가우디는 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곡선을 이용해 건축물을 설계했다. 바르셀로나 시내에 자리한 고급맨션 '카사 밀라'가 대표작으로, 그가 추구한 부드러운 곡선이 잘 살아 있다. 오디오 가이드를 이용하면 건물 내부를 자세한 설명과 함께 꼼꼼히 돌아볼 수가 있다. 맨션 곳곳에서 마주치는 독특한 디자인을 감상하다보면 가우디의 상상력에 절로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카사 밀라 4층 일부에는 실제로 이 건물에 살았던 상류층의 생활상을 재현해놓았다. 문고리 하나, 가구하나에도 자연미와 인체공학을 결합한 그의 오가닉 스타일이 잘 배어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된 카사 밀라의 압권은 옥상 정원이다. 다양한 디자인의 조형물이 세워진 정원은 영락없는 판타지 세상이다. 특히 밤이면 작품 곳곳에 조명을 해두어 더 환상적 풍광이 펼쳐진다. 1906년 카탈란 모더니즘이 절정에 달했을 때 건설을 시작했고 1912년에 완공했다.
바르셀로나를 대표하는 가우디의 역작은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다. 1882년 설계된 이후 지금까지도 건축 중인 상태로, 스페인에서 가장 인기 있는 건축물로 꼽힌다. 가우디가 약 40년 동안 성당을 설계하고 건축에 몰두했으며, 말년의 15년 동안은 이 성당 건축에만 매달렸다. 초현실주의의 독특한 형태를 띠고 있는 성당에는 12개의 종탑과 4개의 돔이 만들어 져있다. 성당 내부의 기하학적이면서도 화려한 인테리어도 압권이다. 탑에 오르면 바르셀로나 시내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성당 지하에는 가우디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성가족 성당'이라는 뜻을 지닌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2세기에 걸쳐 짓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금전적인 사정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완성도에 대한 열정과 집요함도 한몫을 하고 있다. 우리의 중앙 정부나 지자체들이 임기 내 서둘러 뚝딱해댔던 일부 토목공사, 건설공사와는 너무도 다른 마인드가 아닐 수 없다.
한편 바르셀로나 도심투어의 하이라이트격인 고딕 지구와 람블라스 거리를 둘러보는 것도 빼놓을 수가 없다. 명소가 밀집한 고딕 지구에는 13~15세기 건축물이 들어서 있고, 카테드랄 앞 새 광장을 중심으로 이어진 골목을 따라 걷는 것도 운치 있다. 또 우아한 분위기 속에 커피 한잔을 즐기자면 바르셀로나의 예술혼이 살아 숨 쉬는 람블라스 거리도 찾을 법하다.
◆여행정보
▶가는 길=이베리아반도 열차기행을 위해서는 먼저 포르투갈 리스본을 찾아야 한다. 인천에서 리스본까지의 직항 편은 없다. 파리를 경유해 리스본으로 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한항공, 에어프랑스 등을 이용하면 경유시간 포함 15~16시간 정도소요 된다. 유럽의 대도시로 향한 뒤 비행기나 기차로 다시 이동하는 것도 방법.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리스본까지는 야간열차가 운행되고 있다. 마드리드~바르셀로나 구간은 특급 아베열차에 오른다.
▶여행팁=이베리아 반도의 중심 스페인. 화폐는 유로화를 사용하며, 시차는 한국보다 8시간(서머타임 적용 시 7시간) 늦다.
▶미식거리=철판 볶음밥 파에야가 대표 음식이다. 또 돼지 뒷다리의 넓적한 부분을 통째로 소금에 절여 바람에 건조시킨 스페인의 전통 햄, 하몽도 맛있다. 와인 생산량은 세계 3위를 차지할 정도로 유명하다.
▶열차여행=레일유럽 PASS
이베리아 반도 열차기행에는 레일유럽을 이용하면 된다. 레일유럽은 프랑스 국영 철도청(SNCF) 와 스위스 연방 철도청(SBB)의 합자회사로 유럽 열차 티켓과 유레일패스 등 각종 철도 패스를 배급하고 있다.
◇루지타니아 (Lusitania)=포르투갈에서 스페인이나 프랑스까지 여행할 수 있는 수드-엑스프레소(Sud-Expresso)나 루지타니아 콤보이오(Lusitania Comboio) 호텔 야간 열차와 같은 국제 구간도 운행하고 있다. '리스본 산타 아폴로니아~마드리드 차마르틴역' 8시간 40분소요. 원하는 구간을 선택해서 해당 운행 기차의 구간권 티켓 구입이 가능하며, 일정기간 동안 해당 국가의 국철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유레일 1개국 패스 또는 2개국 패스를 선택해 여행할 수도 있다
◇스페인 아베(AVE)=아베('AVE')는 'Alta Velocidad Espanola'의 약자로, '스페인 초고속'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스페인어로 '새'를 뜻하는 'ave'와도 그 표기법이 같다. 최고 시속 300km까지 운행되며, 스페인의 모든 주요 도시들이 아베로 연결되어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세비야, 발렌시아와 같은 도시로 이동하는 시간을 최소화 할 수 있다. 마드리드~바르셀로나 2시간38분소요.
자세한 상품 문의는 가까운 여행사에서 가능하며, 레일유럽 한국사무소 웹사이트(www.raileurope.co.kr) 에서는 여행자의 일정에 맞는 상품을 선택할 수 있도록 다양한 철도 상품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