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만의 귀향이었다.
K-리그와는 첫 만남이었다. 2002년 고려대를 졸업한 그는 한-일월드컵 4강 신화를 달성한 후 독일 분데스리가 바이에르 레버쿠젠에 둥지를 틀었다. 곧바로 빌레펠트로 임대돼 프로생활을 시작했다. 프랑크푸르트와 마인츠, 코블렌츠, 프라이부르크를 거쳐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기성용과 함께 스코틀랜드 셀틱에서 뛰었다. 2012~2013시즌 뒤셀도르프로 이적했다. 방황이 시작됐다. 개인 사정으로 은퇴까지 고민했다. 그러나 그라운드를 떠날 수는 없었다.
지난달 FC서울의 품에 안긴 차두리(33)의 D-데이는 14일이었다. 무대는 K-리그 최고 잔치 슈퍼매치였다. 당초 서울은 수원전에 차두리를 엔트리에서 제외할 예정이었다. 홈이 아닌 원정인 데다 무대가 무대인 만큼 부담을 느낄 수 있다고 판단했다. 긴장의 끈이 팽팽한 상황에서 무리할 경우 부상에 노출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10일 베갈타 센다이와의 원정경기에서 0대1로 패한 후 마음이 바뀌었다.
휘슬이 울렸다. 전매특허인 폭발적인 오버래핑은 여전했고, 서울의 포백에도 무리없이 녹아들었다. 수원팬들은 차두리가 볼을 잡을때마다 야유를 보냈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스테보와의 맞대결은 압권이었다. 스테보는 클래식 최고 수준의 몸싸움 능력을 갖고 있다. 서울은 슈퍼매치 때마다 스테보의 파워에 혼이 났다. 힘이 좋은 차두리의 등장으로 고민이 말끔히 해결됐다. 차두리는 시종 스테보와의 몸싸움에서 완승을 거뒀다. 스테보가 차두리에 밀리자 서정원 수원 감독은 스테보의 위치를 오른쪽으로 옮겼다. 차두리는 노련한 위치선정으로 수비진에 힘을 더했다.
각본없는 드라마에 아쉬움도 있었다. 후반 42분 라돈치치에게 동점골을 허용했다. 볼은 차두리의 키를 넘어 라돈치치에게 배달됐다. 그로서는 어쩔 수 없었지만 빌미가 됐다. 그렇게 데뷔전이 막을 내렸다. 결과는 1대1이었다.
오랜만의 풀타임 출전, 쉽지 않았다. 경기 후 거친 호흡은 여전했다. 단 하나로 행복했다. 그라운드와 다시 만난 것이다. 표정이 밝았다. 그는 "오랜만에 실전을 뛰다보니 힘이 들고 긴장도 했다. 그래도 후배들과 한국에서 경기를 해서 감격스러웠다. 즐거운 90분이었다"며 "유럽에서 11년간 뛰면서 동료의식이 그리웠다. 오늘은 선수들과 땀흘리고 의지하면서 경기를 했다. 승패를 떠나 큰 선물이 됐다"며 웃었다.
입담도 생생했다. 가감이 없었다. 야유를 받은 데 대해 "내가 왜 야유를 받아야 하나"며 억울해 했다. 그리고 "아버지(차범근 감독)도 여기에서 감독 생활을 하셨다. 또 내가 이 팀에 있다가 유럽 갔다가 다시 서울로 온 것도 아니다. 상대편 팬들이 저라는 선수를 의식한 것 같다. 유럽에서 안 받아본 야유를 한국에서 받았는데 이것도 축구의 하나"라고 미소를 지었다.
정대세와의 대결은 또 다른 화제였다. 둘은 차두리가 셀틱에서 활약하던 2012년, 한 방송사의 프로그램을 통해 처음 만났다. 남과 북, 이념의 경계는 없었다. 축구란 공통분모로 금세 친해졌다. 차두리가 지난해 분데스리가로 복귀한 후에는 형제 못지 않은 정을 나눴다. 정대세는 당시 FC쾰른 소속이었다.
그러나 충돌은 다소 싱거웠다. 정대세가 전반 39분 두 번째 경고를 받아 퇴장당했다. "(퇴장 장면에 대해)뭐한 것인지 물었다. 자기도 잘 모르겠다고 하더라. 정대세가 퇴장당한 것은 사실 웃겼다. 그 나름대로의 즐거움이었다."
'차미네이터' 차두리가 드디어 시동을 걸었다. 서울은 클래식에서 여전히 첫 승(4무2패)을 신고하지 못했다. 하지만 희망의 꽃은 피어나고 있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