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그동안 못 느꼈던 경기의 소중함이 느껴져요."
LG의 최고참 투수 좌완 류택현(42). 불혹의 나이에 은퇴 문턱까지 갔지만, 스스로 팔꿈치 수술을 선택한 뒤 플레잉코치로 돌아와 이젠 어엿한 정식선수로 뛰고 있는 의지의 사나이다. 자비로 수술을 강행했지만, 현역 복귀 자체가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특유의 성실함으로 이를 극복했다. 프로 생활 20년차 시즌이 가능하게 한 건 철저한 자기관리였다.
류택현이 경기에 나설 때마다 새로운 기록이 작성된다. 투수 최다경기 출전 신기록이다. 9일 현재 845경기. 등판할 때마다 역사가 새로 쓰여지고 있다.
9일 잠실 NC전에서도 승리의 디딤돌이 됐다. 류택현은 LG가 6-4로 역전한 뒤 6회초 무사 3루서 등판했다. 앞선 투수 임찬규가 상대하던 노진혁과 마저 승부해 볼넷을 내주고, 김태군에게 좌전 적시타를 맞아 승계주자에게 점수를 내줬다.
계속 되는 무사 1,2루 위기. 하지만 상대 1~3번 타자를 연달아 범타로 돌려 세우며 여전한 실력을 과시했다. 김종호를 4구만에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 세운 류택현은 차화준을 1루수 앞 땅볼로, 조영훈을 유격수 뜬공으로 잡아냈다.
그가 1홀드를 추가하는 순간이었다. 올시즌 첫 홀드였다. 통산 107번째 홀드.
올시즌 LG 불펜은 정현욱의 가세로 보다 단단해졌다. 그리고 그 틈바구니에서 노장 류택현의 역할은 다소 제한적이다. 과거처럼 승리를 지키기 위해 나오는 필승계투조 역할이 아닐 때가 더러 있다.
그래서일까. 최근 들어 새롭게 느끼는 감정이 있다. 류택현은 "그동안 전혀 느끼지 못했던 한 경기, 한 경기의 소중함을 요즘 들어 느낀다"고 말했다. 경기 전에도 "많이 나가기만 하면 된다"며 싱글벙글 웃던 그다.
수많은 경기를 뛰어왔지만, 등판의 소중함을 이만큼 느낀 적은 없었다. 선수생활 말년이 다가오니 잠깐의 등판이라도 고이 간직하고 싶은 기억이 됐다.
또다시 최다경기 출전기록을 경신한 류택현은 "출전경기 기록은 의식하지 않는다. 기록보다는 후배의 귀감을 살 수 이는 피칭을 하려고 노력한다"며 활짝 웃었다. 그리고 한 마디를 빼놓지 않았다. "매경기 팀 승리에 기여를 해서 은퇴 전에 꼭 가을야구를 해보고 싶어요."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