챔피언스리그 8강에 오른 팀 중 만만하게 볼 팀은 단연코 하나도 없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토너먼트 특성상 모두가 '우승권'에 속해있다고 표현해도 무방할 정도. 또, 상대가 1월 이적 시장에서 드록바와 스네이더를 영입하며 공격진에 무게를 잔뜩 실은 팀이라면 의외의 결과가 나올 확률은 더욱 높아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베르나베우에서 갈라타사라이를 상대한 레알은 한 클래스 높은 내용을 선보였고, 3-0 완승을 챙기며 일찌감치 4강행을 예약했다. 부담스러운 터키 원정을 앞두고는 있지만, 챔스 기준 시즌 첫 무실점 경기까지 기록한 이번 1차전의 보상은 꽤 클 것이다.
두 팀의 가장 큰 차이라면 '공격으로 전환하는 과정' 아니었을까. 무리뉴 사단의 주 무기인 역습은 이미 정평이 난 부분, 빠른 공격 전환을 감당해야 할 상대 팀엔 일종의 선택지가 주어진다. 경기장 곳곳을 모두 압박하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라운드는 넓고 이를 메울 선수의 숫자는 한정됐기에 어쩔 수 없는 법. 대략적인 그림을 그려봤을 때, 앞쪽에 무게중심을 둬 윗선에서부터 강력한 전방 압박으로 승부를 보는 방법, 아니면 아예 엉덩이를 빼고 내려앉아 역습의 빌미 자체를 주지 않는 방법 정도가 있었을 텐데, 결과적으로 '빠름, 빠름, 빠름'의 LTE 급으로 전개된 레알의 패스 흐름에 두 방법 모두 여의치 않았다는 생각이다.
경기 시작과 함께 약간 아래로 내려가 라인을 좁히며 안정을 취했던 갈라타사라이의 운영은 토너먼트 원정 경기에서 나올 수 있는 지극히 일반적인 장면이었다. 그런데 이 팀이 '잠깐'의 틈을 내줬던 그 순간, 문제는 일어났다. 후방에서 움직이던 알론소가 수비형 미드필더 뒤, 중앙 수비 앞 공간으로 완벽한 패스를 찔러주었고, 이후 외질의 패스를 받은 호날두가 가볍게 골키퍼 무슬레라를 가볍게 넘기는 슈팅으로써 선제골을 꼽아낸 것. 가뜩이나 빠른 공격 전환 템포를 의식하고 있었을 갈라타사라이가 전반 9분 만에 다소 정적인 상황에서 한 방을 얻어맞은 것은 레알과의 8강 토너먼트 전체를 흔들어놓았다.
후방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하는 알론소의 발끝이 살아있었고, 이 진영에서 넘어오는 패스는 끊임없이 그들을 성가시게 했다. 패스가 살아 들어오면 계속해서 뒤로 밀려나 수비를 해야 하는 시간대가 늘어나고, 그만큼 성공적인 공격 전환과 득점 기회를 잡을 가능성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무작정 앞으로 나가기도 힘든 것이 곧 레알과 같은 팀을 상대하기 어려운 이유다. 앞으로 나가며 뒷공간을 내줬을 때 레알이 공격 빠른 공격 전개가 이뤄진다면 3 vs 3, 4 vs 4 정도의 수적 싸움이 이뤄질 게 뻔한 상황. 게다가 호날두의 스피드는 물론 오늘처럼 폼이 괜찮은 외질과 디 마리의 전방 플레이메이킹이 제대로 살아난다면 더욱 처참히 무너질 우려도 상당히 컸다. 앞으로 나가기도, 뒤로 물러나 있기도 부담스러운 건 매한가지였다.
그렇다고 레알의 공격진이 소강상태를 보였을 때마다 간간이 노렸던 반격의 재미도 그리 쏠쏠하지 않았다. 갈라타사라이로서 가장 아쉬웠을 부분은 드록바-일마즈 아래에서 공격 기회를 창출해내야 할 스네이더가 부진에 허덕이다가 결국 하프타임에 교체 아웃됐다는 점. 공격으로 전환하는 과정이 매끄럽지 못하자 박스 밖 중거리 슈팅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여기엔 레알 수비진의 안정감도 한 몫 단단히 했다. 전반 초반, 드록바의 등지는 움직임에 의해 완벽히 벗겨지며 슈팅을 허용했던 바란이 이후 완벽에 가까운 수비로 공격의 흐름을 틀어막았으니, 갈라타사라이로선 딱히 뾰족한 수를 찾을 수 없었던 경기였다. <홍의택 객원기자, 제대로 축구(http://blog.naver.com/russ1010)>
※객원기자는 이슈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위해 스포츠조선닷컴이 섭외한 파워블로거입니다. 객원기자의 기사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