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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성남' 안익수표 클럽하우스의 조용한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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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구파' 안익수 성남 일화 감독(48)은 사석에서 책 이야기를 즐긴다.

부산 아이파크 사령탑 시절 정몽규 구단주(현 대한축구협회장)와도 자주 책을 화두삼았다. 지난 겨울 동계훈련지에서 만난 안 감독은 "요즘 찰스 두히그의 '습관의 힘'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고 귀띔했다. 안 감독의 성남행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정 회장이 직접 선물한 책이다. 안 감독의 취미 역시 '책 선물하기'다. 부상으로 입원한 제자를 문병갈 때면 어김없이 한손엔 책이 들려 있다. 부산을 떠나던 날도, 전선수단에게 책을 한권씩 안겨주고 왔다.

시즌 개막 후 안 감독은 기자들을 볼 때마다 "우리 선수들이 읽을 만한 인문학 책 좀 기부하시라"고 했다. "클럽하우스 프로젝트의 일환"이라며 웃었다. 그 노력이 결실을 맺고 있다. 성남 탄천운동장 맞은편 체육회관 7층 클럽하우스에 아늑한 독서공간이 탄생했다. '독서광' 안 감독이 그간 읽어온 책 가운데 192권의 리스트를 엄선했다. 안 감독의 뜻을 지지하는 이들이 리스트에 '입각', 십시일반 책을 보내왔다. 축구에 관한 책은 의외로 많지 않다. '삼국지' '삼한지' '초한지' 등 대하역사소설 전집, '정의란 무엇인가' 류의 인문학 서적, 'CEO 안철수 영혼이 있는 승부' '혼창통' '스위치' 등 자기계발서,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1Q84', 영문학자 고 장영희 교수의 수필집 '내 생애 단 한번' 등 다양한 장르의 좋은 책들이 서가를 빼곡히 메우고 있다. 감독 집무실에 있던 소파도 선수들을 위해 기꺼이 내놨다. 작지만 따뜻한 독서, 대화공간을 만들었다. 책도 읽고, 차도 마시고, 수다도 떨 수 있는 공간이다.

클럽하우스의 변화는 이뿐만이 아니다. 지하에서 주민들과 함께 이용하던 웨이트트레이닝 시설 대신 선수들만을 위한 웨이트트레이닝룸을 만들었다. 3명 이상이 함께 쓰던 방은 '2인1실' 원칙을 정했다. 한정된 공간 내에서 운영의 묘를 짜내야 했다. 우선 안 감독이 솔선수범했다. 감독용 집무실을 4명의 코치들의 사무공간으로 내줬다. 선수들과 같은 크기의 비좁은 방으로 이사했다. 통상 1인1실을 쓰는 4명의 코치들에게도 희생을 요구했다. 코치 2명이 한방을 나눠쓰고, 2명은 출퇴근하도록 했다. 인근에 2군선수용 50평형대 아파트도 마련했다. 방 4개의 아파트에 8~9명의 선수가 머문다. 클럽하우스에는 독서실, 웨이트트레이닝룸, 대형TV 등 편의시설을 구비했지만, 2군 숙소에는 일부러 투자를 아꼈다. "조금이라도 불편하게 만들고, 승부욕을 자극해, 빨리 1군으로 올라오게 하려는" 감독의 의도가 담겨 있다.

성남에서 청년기를 보낸 안 감독은 열악한 클럽하우스 시설에 대한 선수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이해한다. 리그 최다 우승(7회) 성적에 걸맞지 않은 시설에 대해, 부임 직후부터 개선의 의지를 피력했었다. "이곳에서 젊은 날을 보내는 후배들이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다"고 했었다. 당장 큰 투자는 어렵지만, 작은 변화부터 시작했다. "축구클럽은 선수영입, 승패도 중요하지만 향후 10년, 50년 후까지 바라보는 문화를 만드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신념을 표했다.'책 읽는 축구클럽' 성남의 조용하지만 의미있는 변화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