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미래를 예측하기란 참 힘들다. '한국축구의 아이콘' 박지성(32)도 사람인지라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6월 7년 간 정든 맨유를 떠나기로 마음을 굳혔다. 새로 둥지를 틀게 될 퀸즈파크레인저스(QPR)의 밝은 미래를 봤다. 토니 페르난데스 QPR 구단주가 제시한 청사진은 기대감을 부풀리기에 충분했다. 구단주의 말대로, 스타급 선수들이 대거 영입됐다. 전력이 한층 강화된 듯 보였다. 새 시즌에 돌입하기 전 QPR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예상 순위도 중위권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21일(한국시각) 현재 QPR은 리그 꼴찌다. 강등권 탈출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박지성도 팀이 이렇게까지 추락할지 꿈에도 몰랐다. 박지성의 부친 박성종씨는 "지성이도 팀이 강등권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이적했다"며 "정신적으로는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단지, '아! 이런 팀도 있구나'라는 것을 느꼈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QPR맨'으로 지낸 8개월,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좋은 일보다는 부정적인 일이 더 많았다. 그러나 박지성에겐 '독'이 아닌 '약'이 됐다. 박성종씨는 "지성이가 네덜란드 PSV에인트호벤과 맨유에 있을 때 이런 경험을 해보지 못했다. 앞으로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박지성은 유럽에서 지낸 10년 동안 '천국'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주전경쟁에 대한 압박감에 시달렸다. 그러나 강등 스트레스는 받지 않았다. 우승만 다투는 팀에서 줄곧 생활했기에, 실제로 우승도 많이 했기에 적응이 안되는 것은 당연했다. QPR 이적 당시 우려했던 부분이기도 했다. '설마'했던 것이 현실이 됐다. 시즌 초반 성적 부진으로 감독이 바뀌었다. 게다가 부상이 도졌다. 덩달아 팀 내 입지도 흔들리는 듯 보였다. 박성종씨는 "출전 타이밍이 들쑥날쑥해서 경기 감각을 유지하기 힘들다고 했다. 그러나 서운함은 없었다고 한다. 해리 레드냅 감독이 전략적으로 지성이를 기용한다고 들었다"고 했다.
박지성은 8개월 만에 영국 시골 청년의 티를 벗었다. '런더너(Londoner)'가 다 됐다. 대도시에서 일반인의 삶을 즐기고 있다. 박지성은 런던 지하철, 이층버스를 타봤단다. 박지성이 마지막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한 것은 11년 전이다. 이젠 재래시장도 다니곤 한단다. 박성종씨는 "일본, 네덜란드는 시내를 10분 안에 돌 수 있을 정도로 시골이었다. 맨체스터도 그랬다. '축구광'이 아닌 이상 아들을 알아보는 팬들이 적었다. 축구 외에 할 것이 없었다. 그러나 런던에선 축구 외에도 할 것 많단다. 대도시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박성종씨는 "지성이가 젊은 선수들을 걱정하더라. '화려한 외부요인으로 인해 운동하는 것이 힘들겠다'라고 하더라"고 덧붙였다.
박지성은 현역생활의 마지막을 달리고 있다. 당초 35세까지 뛰기로 계획했다. 그러나 QPR과 계약돼 있는 마지막 한 시즌을 소화한 뒤에는 은퇴할 예정이다. 박성종씨는 "미래는 알 수 없다. 내년시즌 이후 다른 팀에서 1년 더 뛸 가능성도 존재한다. 그러나 지성이도 내년시즌 이후 은퇴하겠다는 마음을 굳힌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한국 축구계는 'K-리거 박지성'을 원하고 있다. 침체돼 있는 한국 프로축구의 흥행을 되살려줄 기폭제로 박지성을 꼽고 있다. 그러나 박지성의 K-리그 활동과 국가대표팀 복귀를 보기는 힘들 듯 하다. 박성종씨는 "지성이가 한국 프로축구의 부활에 헌신한다는 마음을 가져도 경기력에 대한 팬들의 부정적 평가는 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지성이는 축구선수로 이 정도 뛰었으면 됐다는 생각이 강하다. 대표팀 복귀도 같은 맥락이다"고 했다.
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