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의 야구 수준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대회가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다. 대회에 참가하는 국가들 모두 최강의 선수들을 모아 전력을 꾸리기 때문이다. 명예와 자존심으로 먹고 사는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국가의 부름을 받고 대거 출전한다. 국가 대항전으로 열리는 야구 국제대회 가운데 권위와 규모 뿐만 아니라 경기력도 최고 수준이다. 제3회 WBC 1라운드 A,B조 경기가 지난 6일(이하 한국시각) 종료됐다. A조의 쿠바와 일본, B조의 대만과 데널란드가 각각 2라운드에 진출했다. C,D조 경기는 7일 푸에르토리코의 히람비손스타디움과 미국 애리조나주의 솔트리버필드에서 각각 시작됐다. C조의 경우 도미니카공화국과 베네수엘라, D조는 미국과 캐나다의 강세가 예상된다.
C조와 D조의 경기를 더 지켜봐야겠지만, A,B조 경기에서 드러난 결과를 놓고 볼 때 세계적인 변화의 기운이 감지되는 부분이 있다. 우선 경기력의 평준화다. 2000년대 이후 야구의 글로벌화가 꾸준히 진행돼 온 결과다. 이번에 월드베이스볼조직위원회는 야구의 글로벌화를 가속화하기 위해 본 대회에 앞서 지역 예선을 열기도 했다. 지난 2009년 WBC에서 네덜란드는 돌풍을 일으키며 유럽에서도 야구가 경기력을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당시 네덜란드는 '우주 최강'이라 불리던 도미니카공화국을 두 차례나 꺾는 기염을 토했다. 네덜란드는 이번 WBC에서도 강호 한국을 꺾으며 주목을 받았다. 한국전서 호투한 왼손 디에고마 마크웰은 슬라이더와 커브 등 변화구 구사력이 뛰어났다. 메이저리그 434홈런 경력의 앤드루 존스를 비롯해 일본 야쿠르트에서 뛰고 있는 블라디미르 발렌틴과 톱타자 안드렐톤 시몬스 등은 만만치 않은 타격실력을 과시했다. 네덜란드는 꾸준히 메이저리거들을 배출하고 있으며, 마이너리그에서도 수많은 유망주들이 성장하고 있다.
WBC에 첫 출전한 A조의 브라질도 놀라운 경기력을 선보였다. 브라질은 1라운드 첫 경기에서 일본에 3대5로 패했지만, 7회까지 3-2로 앞서는 등 야구선진국 일본이 혼쭐이 났다. 브라질은 이번에 메이저리그 명유격수 출신인 배리 라킨에게 대표팀 사령탑을 맡겼는데, 일본계 2~3세 선수들을 중심으로 야구의 저변이 확대돼 가고 있다고 한다. 야구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유럽과 남미의 브라질이 세계적인 야구 흐름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번 대회의 총 상금규모는 1400만달러(약 153억원)로 2회 대회와 같은 수준이다. 그러나 관중수입과 중계권료 등 큰 폭의 수익 환경 개선으로 흑자 대회가 유력시되고 있다. 메이저리그를 중심으로 한 야구의 세계화 투자가 얼마나 더 이뤄질지 지켜볼 일이다.
기술적으로는 스몰볼의 강세가 눈에 띄었다. 1라운드 2개조 12경기에서 터진 홈런은 모두 8개로 게임당 0.67개에 그쳤다. 지난 2009년 WBC에서는 38경기에서 85개의 홈런이 나와 게임당 2.18개를 기록했었다. 2006년 1회 대회에서는 게임당 홈런수가 1.79개였다. 한국은 대만전에서 강정호가 친 투런포가 유일한 홈런이었며, 일본은 3경기에서 단 한 개의 홈런도 기록하지 못했다. 1라운드를 치른 시점이 3월초로 아직 타자들의 타격감이 정상 궤도에 오르지 않았기 때문으로 풀이할 수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각 국가마다 거포층이 약해지고 있다는게 설득력있는 설명이다. 화끈한 공격야구를 지향하는 쿠바는 1라운드서 4홈런을 쳤지만, 약체 중국과의 경기서 친 2개를 빼면 사실 장타에 의한 득점은 많지 않았다. 홈런이 줄긴 했지만, 그렇다고 번트와 히트앤드런 등 다양한 작전이 나온 것도 아니다. 출루 자체가 적었고, 투수전 위주로 진행된 탓에 1라운드 전체 타율은 2할3푼에 머물렀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