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는 장갑 벗을 때까지는 모른다'는 말이 있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혼다 LPGA 타일랜드 마지막날 이 같은 일이 벌어졌다. 행운의 주인공은 지난해 '상금왕' 박인비(25)였다.
박인비는 23일 태국 촌부리 시암 골프장의 파타야 올드코스(파72·6469야드)에서 열린 3라운드 최종일 5언더파를 몰아쳐 최종합계 12언더파 276타로 대회를 마쳤다. 뒷 조에서 플레이한 선두 아리야 주타누가른(태국)이 마지막 18홀을 남겨놓고 2타차로 앞서 있었다. 2위로 끝낸 박인비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대기실에서 기다렸다.
그런데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17살인 주타누가른이 흔들렸다. 파5인 18번홀에서 주타누가른이 친 두번째 샷이 그린 앞쪽 벙커턱에 박혔다. 도저히 공을 칠 수 없다고 판단한 주타누가른은 언플레이어블을 선언했다. 1타를 먹고 벙커에서 친 4번째샷은 그린을 넘겨 갤러리가 있는 프린지에 떨어졌다. 5번째 어프로치샷을 퍼터로 시도했지만 긴 풀에 걸려 그린에 올라가지 못했다. 6번째 퍼트는 내리막을 타고 흘러 1m정도 남겨 놓은 곳에 멈췄다. 우승을 눈앞에 뒀던 주타누가른은 7번째 퍼트를 성공시켜야만 연장전으로 승부를 이어갈 수 있는 위기에 내몰렸다. 승리의 여신은 끝까지 외면했다. 주타누가른이 친 퍼트는 홀컵을 돌아 나왔다. 트리플 보기.
모국에서 열린 대회에서 우승을 꿈꾸었던 10대 소녀는 경기를 마친 뒤 결국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반면 대기실에서 연장전을 준비하던 박인비는 1타차 우승 소식을 전해 듣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박인비는 올시즌 처음 출전한 LPGA 투어 대회에서 우승을 신고하며 기분좋게 시즌을 출발했다. 또 2008년 US여자오픈에서 미국 무대 첫 승을 따냈고 지난해 2승에 이어 개인 통산 4승째를 올렸다. 지난주 시즌 개막전 호주여자오픈에서 신지애가 우승한 데 이어 시즌 초반 2개 대회를 한국 선수가 휩쓰는 쾌거를 일궈냈다.
우승 후 박인비는 "우승을 기대하지 않은 대회였는데 마지막 홀에서 선물을 받은 것 같다. 첫 대회에서 우승한만큼 자신감을 갖고 시즌을 치를 수 있게 됐다"며 소감을 말했다. 공동 2위로 출발한 '맏언니' 박세리(36)는 4오버파로 부진, 최종합계 4언더파 284타로 공동 19위로 마감했다. 하나금융그룹과 후원 계약을 태국 현지에서 맺은 유소연은 최종합계 10언더파 278타로 공동 3위에 이름을 올렸다. 최나연은 최종합계 9언더파 279타로 단독 7위를 마크했다.
신창범 기자 tigger@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