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후 성남 일화와 상주 상무의 연습경기, 성남이 1-0으로 앞선 가운데 환상적인 쐐기골이 작렬했다. 측면에서 전광석화처럼 쇄도하던 김태환이 올린 발빠른 '택배 크로스'를 김동섭이 솟구치며 머리로 밀어넣었다. 2대0으로 승리했다. "태환이 크로스가 기가 막혔죠! 저는 점프한 것 밖에 없는데."(김동섭) "점프 타이밍이 완전 예술이었죠!"(김태환) 서로를 한껏 치켜세우다 웃음을 터뜨렸다.
20세 이하 대표팀, 올림픽대표팀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절친이 2013년 드디어 '한팀'에서 만났다. 안익수 성남일화 감독에게 동계훈련 기간 가장 인상적인 선수를 추천해달라고 부탁했다. 이름하여 '추천전형' 인터뷰에, 안 감독은 계사년 뱀띠해, 1989년생 뱀띠 동갑내기 이적생 김동섭 김태환을 뽑아올렸다.
김태환은 '우승팀' FC서울 출신이다. 김동섭은 '강등팀' 광주FC 출신이다. 1위와 최하위, '극과 극' 팀에서 왔지만, 지난시즌 아픔은 닮은꼴이다. 김태환은 2010년 입단 후 3년을 서울에서 뛰었다. '초호화군단'에서 좀처럼 기회를 꿰차지 못했다. 지난해 19경기 1골에 그쳤다. 김동섭은 2011년 데뷔 후 2년간 광주의 에이스로 활약했다. 매년 7골씩을 기록했지만, 강등의 운명에서 팀을 구해내지 못했다.
올림픽대표팀 탈락의 아픔도 함께 겪었다. 올림픽대표팀 예선전 내내 함께 발을 맞췄지만 정작 런던행 티켓은 잡지 못했다. 또래들이 환호했던 2012년은 이들에게 '시련'이었다. 안 감독의 부름을 받았을 때 망설임없이 성남행을 택했다. 프로로서, 선수로서 '생존'을 위해서다.
안 감독은 김동섭을 "있는 듯 없는 듯 강한 존재감"이라는 한마디로 표현했다. "소리없이 할 일을 다하는 선수, 부산 감독 시절부터 눈독들여온 선수"라고 했다. 광운대와의 연습경기에서 2골1도움, 상주전에서 1골을 기록하며 기대에 부응하고 있다. 김태환은 자타공인 '힘짱'에 '몸짱'이다. 벤치프레스 130㎏을 거뜬히 들어올린다. 곱상한 외모와 다르게 성남에서 가장 힘이 센 선수다. 김태환이 그라운드에 들어서면 분위기가 바뀐다. '치타' 김태환의 폭발적인 스피드는 광주 금호고 시절부터 남몰래 공들여온 웨이트트레이닝 덕분이다. "고등학교 때 감독님께서 몸을 키우면 자신감이 생긴다고 하셨다. 시즌 후에도 늘 헬스장에서 개인훈련을 해왔다"고 했다. 올겨울 그 어느때보다 뜨거운 땀방울을 흘렸다. "훈련이 힘들 때마다 서울에서 못뛰던 생각을 하며 이를 악문다"며 웃었다.
1년반밖에 남지 않은 브라질월드컵, 이들은 다시 꿈을 꾸기 시작했다. "청소년대표, 올림픽대표를 해봤으니 이제 국가대표의 꿈이 남았다. 월드컵을 뛰어보고 싶은 꿈이 있다"(김태환) "올림픽에서 탈락의 쓴맛을 봤기 때문에 국가대표가 되서 자리매김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김동섭)며 눈을 빛냈다. 성남에서의 부활이 그 어느때보다 중요한 이유다.
성남 선수들은 올시즌 가장 많은 골을 넣을 선수 1순위로 서슴없이 김동섭을 지목한다. 12~20골까지 기대치는 다양했다. 당사자인 김동섭에게 시즌 목표를 묻자 "15골"이라고 답했다. 김태환은 골보다 어시스트 욕심이 많다. "어시스트를 포함 공격포인트 10개"를 다짐했다. 이중 김동섭에게 몇 개를 나눠줄 거냐는 질문에, 김동섭이 냉큼 답한다. "당연히 10개 다 줘야죠." 김태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하면 많이 주려고요. 같이 먹고 살아야죠. 하하."
'연말 K-리그클래식 시상식에서 꼭 만나자'는 덕담에 이어진 두 에이스의 대화가 솔깃했다. "야, 근데 넌 시상식 가봤어?"(김태환) "아니."(김동섭) "시상식 가면 어떨지 진짜 궁금하지 않냐."(김태환)
제주=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