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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엽이 배팅볼 투수로 나선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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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이 훈련을 진행한 18일 대만 도류구장. 2개의 배팅 케이지에서 타자들이 쉴새없이 타격 훈련을 한다. 배팅볼은 보통 코치나 프런트들이 던져준다.

그런데 한쪽 배팅케이지에 마운드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인물이 배팅볼을 던지고 있었다. 이승엽이었다.

이승엽이 배팅볼을 던진 적이 있었던가. 삼성시절은 물론 일본이나 이전 대표팀에서도 이승엽이 배팅볼을 던지는 모습은 한번도 보지 못했다. 이승엽도 배팅볼을 던진 뒤 덕아웃에서 땀을 닦으며 "작년까지는 배팅볼을 던지지 않았다"고 했다. 팀의 주축 타자였으니 배팅볼을 던질 일이 없었다. 본인이 던지겠다고 해도 주위에서 말릴 수밖에 없는 위치였다. 올해 괌에서 가진 삼성 전지훈련 때 처음으로 배팅볼을 던졌다는 이승엽은 이번 대표팀 전훈에서도 그물망을 앞에 놓고 공을 후배들에게 던졌다.

이전에 이대호 김태균과 함께 유지현 코치의 펑고를 받으며 힘을 뺀 상태였다. 그럼에도 왼손으로 배팅볼을 던질 사람이 적다보니 후배들을 위해 짬을 내 공을 던졌다. 이승엽이 던진 뒤엔 이대호가 나서 배팅볼을 던졌다. 맏형인 주장 진갑용도 시물레이션 게임 때 투수가 돼 타자들에게 배팅볼을 던졌다.

이승엽의 얼굴을 새카맣게 탔다. 괌에서부터 강한 햇볕을 받으며 훈련을 했다. 고참으로서 여유를 가지고 할 수도 있었지만, 후배들이 보고 있기 때문에 더 열심히 했다.

류중일 감독은 지난해 이승엽이 한국으로 복귀할 때 "그냥 야구장에서 후배들과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이승엽의 솔선수범하는 자세와 뛰어난 타격 실력은 삼성이 한국시리즈 2연패를 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그 모습이 대표팀에도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전준우는 "승엽 형이나 태균이형, 대호형 등 잘치는 타자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내 타격에 도움이 된다"며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모습을 보면서 배우고 있다"고 했다.

WBC 대표팀은 역대 대표팀 중 가장 많은 훈련량을 소화하고 있다. 몇몇 선수들은 자신의 소속팀 훈련보다 더 양이 많다고 혀를 내두른다. 그럼에도 훈련 분위기는 너무나 좋다. 후배가 농담해도 껄껄 웃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훈련이 끝나면 최고참부터 막내까지 모두 나와 공을 줍는다. 진갑용 이승엽 등 선배들의 앞장선 노력이 있기에 하나가 되는 대표팀이다. 도류(대만)=권인하 기자 indy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