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애(25·미래에셋)의 닉네임은 '골프지존'이다.
신지애는 2013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개막전에서 '지존'다운 모습으로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17일(한국시각) 호주 캔버라 골프장(파73·6679야드)에서 끝난 ISPS 한다 호주여자오프픈 마지막날 신지애는 공동 선두로 출발했다. '천재소녀' 리디아 고(16)와 챔피언조에서 라운드를 펼쳤다. 뉴질랜드 교포인 리디아 고는 '프로잡는 아마추어'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아마추어 랭킹 1위인 리디아 고는 이 대회에 앞서 열린 뉴질랜드 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상승세는 계속 이어졌다. 리디아 고는 이번 대회 첫날 10언더파를 몰아치며 단숨에 선두 자리에 이름을 올렸다. 마지막날 17언더파 동타로 시작한 신지애와 리디아 고. 팽팽한 긴장감은 숨길 수 없었다. 신지애는 아홉살 어린 리디아 고가 신경이 쓰였는지 좀처럼 타수를 줄이지 못했다. 신지애가 리디아 고를 경계하는 동안 공동 4위(9언더파)로 출발한 세계랭킹 1위 청야니(대만)는 스코어를 줄여가며 선두권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신지애는 흔들릴 법도 했다. 그러나 '지키는 골프'의 진수를 보여주며 정상의 자리에 섰다. 최종 라운드에서 1타를 더 줄인 신지애는 최종합계 18언더파 274타를 적어내 청야니(16언더파 276타)를 2타 차로 따돌렸다. 지난해 처음 LPGA 투어로 편입된 이 대회에서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정상에 올라 상금 18만달러(약 1억9000만원)를 받았다. 시즌 시작을 우승으로 장식한 신지애는 LPGA 투어 통산 11승째를 기록했다.
첫 번째홀부터 신지애는 리디아 고와의 기싸움에서 앞서 나갔다. 1번홀(파5)에서 세번째 샷을 홀컵 바로 옆에 붙인 신지애는 버디를 낚았다. 그러나 리디아 고는 티샷이 흔들리면서 더블 보기를 범했다. 단숨에 3타 차 단독 선두가 된 신지애는 여유있게 라운드를 운영할 수 있는 상황이 됐다. 그러나 이후 2개의 보기를 범하며 리디아 고와 청야니에게 추격의 빌미를 제공했다. 게다가 일몰을 걱정한 대회운영본부는 챔피언조 선수들에게 빠른 진행을 요구했다. 티샷을 날린 신지애는 볼이 있는 곳까지 뛰어갔다. TV 해설자는 "샷이 흔들릴 수 있다"며 걱정했다. 다행히 신지애는 14번홀(파4)에서 탁월한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주며 우승을 향해 한발 앞서 갔다. 청야니와 함께 16언더파로 공동 1위였던 신지애는 이 홀에서 두번째샷이 그린 옆 러프에 떨어지는 실수를 했다. 설상가상으로 공은 광고판 뒷쪽에 떨어졌다. 홀컵이 보이지 않는 광고판 뒤에서 신지애는 환상적인 칩샷을 선보였다. 5m정도 떨어진 지점에서 가볍게 띄운 공은 그린 사이드에 떨어진 뒤 굴러가 홀컵에 그대로 빨려 들어갔다. 타수를 잃을법한 상황에서 오히려 버디를 잡아내며 다시 단독 선두로 올라섰다. 결국 이 샷은 위닝샷으로 선정됐다. 기세가 오른 신지애는 15번홀(파5)에서도 버디를 성공시키며 승리에 쐐기를 박았다.
LPGA 투어 데뷔 이전인 2008년 이미 3승을 올리며 이름을 알린 신지애는 루키 시즌인 2009년에도 3승을 올리는 등 승승장구를 이어갔다. 2승을 추가한 2010년엔 세계랭킹 1위에 오르며 정상을 맛봤다. 그러나 그해 말 시력 교정에 이어 지난해에는 시즌 중 손바닥 수술을 받는 등 부상에 시달리며 2년 가까이 침묵했다. 하지만 지난해 9월 킹스밀챔피언십에서 1년10개월 만에 우승을 차지하더니 그 다음 주 열린 브리티시여자오픈에서 4년 만에 우승컵을 되찾으며 완벽하게 부활했다.
올시즌에 앞서 신지애는 "올해 세계랭킹 1위 자리를 탈환하고 싶다"는 각오를 밝힌 바 있다. 그녀의 도전은 시작됐다.
신창범 기자 tigger@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