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스틸러스의 전지훈련지인 터키 안탈리아는 유럽을 대표하는 휴양도시다.
지중해와 맞닿은 해안 능선은 한 폭의 그림과 같다. 깎아지는 절벽에 서 있는 고대의 성과 작은 집, 봉우리에 눈이 채 녹지 않은 산이 병풍처럼 도시를 두르고 있다. 동유럽과 중동, 아프리카 등 바닷길을 통해 각지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이기도 하다. 기원전 로마제국 점령을 시작으로 아랍세력과 비잔틴제국, 오스만 투르크, 이탈리아 등 유럽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세력들이 괜히 탐을 낸게 아니다. 따뜻한 기후와 아름다운 풍광 탓에 여름 피서철이 되면 유럽 각지에 모인 관광객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계절상 겨울인 현재도 한낮 기온이 20도를 넘기는 경우가 다반사여서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포항 선수단은 이런 여유를 느낄 겨를이 없다. 숙소인 크렘린 팰리스 호텔은 안탈리아 시내와 택시로 30~40분 거리, 요금은 왕복 60유로(약 8만8000원)로 비싼 편이다. 빠듯한 훈련 일정 속에 짬을 내기가 쉽지 않다. 선수들은 호텔 소유 연습구장을 버스로 오가는 일정을 반복하고 있다. 호텔 내에 무료 바와 각종 여가시설이 갖춰져 있지만, 지난달 20일부터 2주가 넘게 머무르다 보니 이제 흥미도 사라졌다. 오랜기간 포항에서 일한 한 스태프는 "이 곳만 벌써 4번째 와서 그런지 감흥이 없다"고 고개를 흔들었다.
동계 전지훈련은 인내와의 싸움이다. 짧은 기간 드러나는 성과가 한 해 농사를 판가름 할 수 있다. 훈련이 반복되는 일상도 기꺼이 받아 들인다. 하지만 오랜 기간 객지 생활을 하면서 쌓여가는 지루함과 그리움은 굳은 의지도 쉽게 허물기 마련이다. 각자의 노하우로 이겨내는 수밖에 없다. 선수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높은 스트레스 해소법은 한국 드라마와 TV 영상 시청이다. 제각각 담아온 영상을 돌려보면서 향수를 달랜다. 식사 시간이 되면 그동안 시청했던 부분들을 이야기하면서 수다가 끊이지 않는다.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끌지 못했던 프로그램도 포항 선수단 사이에선 '국민 드라마'와 동격이다. 휴대폰도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다. 문자 메시지 뿐만 아니라 소셜네트워크(SNS)를 활용해 지인의 안부를 묻거나 소소한 일상을 풀어놓는다. 식사 시간을 마친 뒤 호텔 로비를 둘러보면 어김없이 소파에 앉아 있는 선수들도 더러 있다. '손편지'는 애절한 마음을 달래는 가장 확실한 무기다. 연인과 가족에게 편지를 띄우기 위해 편지지, 엽서 등을 찾기에 바쁜 이들도 있다. 무미건조한 현지식에 지친 일부 선수들은 지인을 통해 한국음식을 공수받는 일도 있다. 그러나 까다로운 현지 세관 검사 탓에 반입이 쉽지 않다. 이러다보니 가장 바쁜게 선수단의 어머니 노릇을 하는 주무다. 임정민 포항 주무는 선수단 살림살이 뿐만 아니라 민원 해결사까지 도맡고 있다. 곁에서 지켜보면 손이 열 개라도 모자를 지경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코칭스태프도 고심의 흔적이 역력하다. 꽉 조이면 끊어진다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오는 27일 베이징 궈안(중국)과의 2013년 아시아챔피언스리그 본선 조별리그까지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마냥 풀어주기가 어려운 여건이다. 식사 시간마다 한 테이블에 모여 묘안을 짜내고 있다. 황선홍 감독은 휴식일인 7일에 맞춰 선수단 볼링 대회를 개최해 친목을 도모할 계획이다. 조정길 포항 홍보팀 대리는 "지루한 일상을 보내던 선수들 입장에선 잠시 쉬어가면서 나름대로 마음을 가다듬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고 내다봤다. 안탈리아(터키)=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