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째 유망주 소리만 듣고 있어요."
부산의 미드필더 김익현(24)이 머쓱해 했다. 그간 스타로 발돋움하지 못한 이유를 물었다. 그는 "장난기가 많은 것이 독이 됐다. 가령 경기 중 공격을 해야 할 때 상대 수비수를 데리고 장난을 친다던가…. 팀에 녹아들지 못하고 혼자 흥을 주체하지 못했다. 감독님들께 찍힐 수밖에 없었다"며 웃었다. 이어 "좋게 말하면 '자유로운 영혼'이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4년간 혼자 겉돌았다. 이젠 팀에 녹아들겠다"고 다짐했다.
군포 태을초 4학년 때 축구화를 처음 신은 김익현은 달리기만 빠른 선수였다. "육상부에서 축구부로 옮겼는데 당시 축구를 진짜 못했어요." 그러나 체계적인 훈련을 받자 잠재력이 폭발했다. 용인 원삼중 1학년 때는 김보경(카디프시티) 이승렬(성남) 등 동기들보다 기량이 좋은 선수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2학년 때부터 나태해졌다. 김익현은 "중3 때 결국 보경이에게 주전 경쟁에서 밀렸다. 기량은 비슷했는데 보경이는 좀 더 성실했고, 나는 불성실했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아버지께서 그 때 처음 '축구를 하지 말라'고 말리셨다. 그래서 일주일 동안 방에서 나오지 않고 시위를 했다"며 기억을 떠올렸다.
이대로 주저앉을 수 없었다. 용인 백암고 1학년 때 홀로 경기를 못뛰었던 김익현은 이를 악물었다. 2학년 때부터 마음을 다잡았다. 그러자 멀티 플레이어 능력을 보유한 김익현은 너도나도 대학 팀에서 탐내는 선수가 됐다. 그런데 사학명문 고려대에 진학한 뒤 고비가 찾아왔다. 김익현은 '자신의 축구인생에 획을 그을 사건'이라고 했다. 음주를 전혀 못하는 김익현은 강요당하는 음주문화가 싫었다. 종적을 감췄다. 축구를 그만두겠다는 결심까지 세웠다. 대학에선 영구제명을 운운했다. 할 수 없이 팀으로 복귀한 김익현은 1학년을 마치고 곧바로 드래프트를 신청해 2009년 부산 유니폼을 입게 됐다.
우여곡절 끝에 프로선수가 됐다. 가진게 많은 선수라고 평가받았다. 순간 스피드는 물론 킥 능력이 일품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중학교 동기인 이범영(부산)과 함께 슈팅 훈련을 하며 킥 능력을 향상시켰다. 그러나 또 다시 게으름의 늪에 빠졌다. 게다가 귀까지 막았다. 주위의 조언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4년간 2군을 전전했다. K-리그 출전은 14경기 밖에 되지 않았다. 그동안 김익현은 부모님께 기대감만 심었다. 동계훈련 때마다 잘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한 번 '괴짜'로 낙인찍힌 뒤 좀처럼 기회가 찾아오지 않았다. 그러면서 지난시즌 수차례 축구선수를 포기하겠다는 나약한 마음을 먹었다. 그는 "그렇게 축구를 좋아하시던 아버지께서 이젠 나 때문에 축구를 가장 싫어하신다. 그간 불효를 했다. 이젠 운동장에서 달라진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으로 효도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익현이 자신만의 세계에서 빠져나오게 된 것은 절친의 응원의 힘이 컸다. 지난 11월 25일 수원전에 교체출전한 김익현을 경기장에서 지켜본 친구가 "잘했다.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칭찬했다. 이 한 마디에 희열을 느꼈다. 김익현은 "이 때부터 나를 버리고 주위를 돌아보게 됐다"고 설명했다.
덥수룩한 턱수염은 김익현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그는 팀 내 분위기 메이커다. 끼가 넘친다. 그는 "의도하지 않았는데 내가 말만 하면 동료들이 웃는다"며 쑥스러워했다. 별명은 '고대 소지섭'이다. 대학교 때 생긴 별명이다. 부산에서도 통하기 시작했다. 김익현은 "신인 골키퍼 김기용이 팬들에게 '고대 공 유'라고 불리자 트위터에 나도 '고대 소지섭'이라고 잠깐 발을 담궜는데 그렇게 불리게 됐다"며 웃음을 자아냈다.
그는 프로 입단 이후 오른팔에 문신을 새겼다. 'I WILL BE THE STAR OF THE WORLD.'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되겠다는 의미였다. 김익현은 "이제 정신차렸으니 썩혀뒀던 내 장점을 살릴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스타성을 충분히 갖춘 김익현이 '개과천선'을 선포했다.
촌부리(태국)=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