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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에서 장옥정까지 리메이크 열풍, 소재 고갈인가 新트렌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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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까지만해도 드라마에서 리메이크는 '금기'시되는 장르였다. 표절에도 민감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작품을 다시 만든다는 것에 거부감이 있던 시기였다. 하지만 최근 드라마시장에서 이같은 거부감은 사라진듯하다. 올해 초부터 리메이크작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흥행작을 리메이크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특히 명의 허준의 리메이크는 한국 드라마에서 꾸준히 이어져왔기 때문에 놀라운 일도 아니다. MBC는 1975년 '집념', 1991년 '동의보감', 1999년 '허준'에 이어 네번째로 허준의 일대기를 다룬 드라마를 3월부터 방영할 예정이다. '주몽' '이산' '선덕여왕' 등의 연출을 맡으며 이병훈 PD 이후 최고의 사극 연출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김근홍 PD가 연출을 맡은 '구암 허준'은 1999년 방송된 '허준'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MBC는 "이미 방송된 '허준'의 캐릭터와 이야기를 현재 시청자들의 눈높이에 맞게 보완하고, 새롭고 극적인 장면들을 추가해 전작과 차별화된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크게 다른 이야기 없이 전형적인 리메이크작으로 만들겠다는 의미. 허준의 일대기는 앞서 방송된 두번 모두 큰 인기를 모았기 때문에 방송사 입장에서는 군침도는 소재일 수밖에 없다. 주인공 허준과 존재감이 큰 유의태 역은 김주혁과 백윤식이 각각 맡았다.

'허준'과 함께 가장 많이 리메이크된 희빈 장씨의 이야기도 올해 다시 전파를 탄다. '야왕' 후속으로 오는 3월부터 방송 예정인 SBS 새 월화극 '장옥정, 사랑에 살다'(가제·이하 장옥정)가 바로 그 것이다. 이미 8번이나 만들어진 장희빈을 또 다시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장옥정'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든 이번 리메이크판은 인간 장옥정 본인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침방나인이었던 장옥정을 뛰어난 패션감각을 지닌 조선시대 패션디자이너로 만들어 새로운 이야기를 펼친다는 복안이다. 김태희와 유아인이 이미 장옥정과 숙종으로 캐스팅된 상태에서 또 다른 이야기축인 인현왕후 역을 누가 맡을지도 관심사다.

그런가하면 2월 수목극은 리메이크작끼리 경쟁을 펼칠 예정이다. MBC 새 수목극 '7급 공무원'과 SBS 새 수목극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이하 그 겨울)이 바로 그것. '7급 공무원'은 영화 '7급 공무원'을 다시 쓰는 작품인 것을 많이 이들이 알지만 '그 겨울'이 리메이크작인 것을 아는 이는 드물다. 늘 창작물만 내놓던 노희경 작가의 야심작인 '그 겨울'은 일본 드라마 '사랑 따윈 필요없어, 여름'의 리메이크작이다. 이미 2006년 우리나라에서 김주혁 문근영 주연의 영화 '사랑 따윈 필요없어'로 리메이크된 바 있다.

영화는 흥행에 실패했지만 이번 드라마는 노 작가가 그간 작품성에 비해 흥행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뒤집기 위해 고심한 작품이라 더욱 기대를 모으고 있다. 조인성 송혜교라는 걸출한 캐스팅도 관심거리.

이같이 리메이크작들이 대거 등장하는데는 명과 암이 있다. 물론 '허준'이나 '장희빈' 등의 소재는 늘 성공을 거뒀기 때문에 흥행가능성이 높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3040 여성들이 주 시청층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새로울 것 없는 소재를 또 봐야한다는 것에 거부감이 들 수도 있는 일. 한 방송 관계자는 "특히 이번 리메이크 사극들은 흥행을 장담하기 힘들다. '장희빈'은 너무 많이 리메이크됐다. 게다가 마지막 작품인 '동이'는 큰 성공을 거두지도 못했다. '허준'이야기는 예전에는 색다른 소재가 될 수 있었지만 최근에는 비슷한 이야기가 너무 많다. 현재 방영중인 '마의'도 '허준'과 비슷하다는 말이 많다"고 평했다.

소재 고갈이라는 측면에서는 우리 드라마시장에 안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한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이미 드라마로 나올 만한 소재는 다 나왔다는 말이 있을만큼 작가들도 창작의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게다가 리메이크작은 전작과 차별되게 쓰면서 더 재미있게 만드려면 솔직히 창작보다 더 많은 노력이 들어간다. 단순히 같은 소재를 다시 울궈먹는다는 시선은 타당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어찌됐든 리메이크가 드라마 시장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을지 지켜볼 일이다.

고재완 기자 star77@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