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중 유일하게 웃으며 코트에 설 수 있는 날. 올스타전. 평소 화장기 없는 투사의 이미지를 벗어 던지고 한껏 예뻐보이고 싶은 여자프로농구 선수들이지만 망가짐을 선택했다. 지켜보는 팬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몸개그에 코믹댄스가 이어졌다. 20일 올스타전이 열린 경산실내체육관을 꽉 채운 5036명의 관중들은 큰 웃음으로 화답했다.
▶만신창이 위성우 감독, MVP 김정은의 굴욕 '축제니까 웃는다'
경기도 경기지만 올스타전의 가장 큰 볼거리는 선수들과 코칭스태프가 참여하는 다양한 이벤트. 만약, 참가하는 선수나 감독들이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였을 경우에는 최악의 이벤트가 될 수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에는 최고의 팬서비스가 된다. 이날 올스타전이 그랬다.
선수들은 경산 지역 어린이팬들과 네발 자전거 타기 릴레이 시합을 벌였다. 자신들의 몸에 자전거 사이즈가 꼭 맞는 어린이팬들과는 달리 덩치 큰 선수들에게 네발 자전거 타기는 고역이었다. 이선화(삼성생명)는 페달을 밟지도 못하고 자전거와 함께 뒤로 넘어가며 엉덩방아를 찌었다. 김단비(신한은행)의 자전거는 방향을 잃고 자신의 팀 벤치를 향해 돌진했다.
최고로 코믹했던 장면은 우리은행 위성우 감독의 굴욕. 위 감독은 팔굽혀펴기, 훌라우프, 제기차기, 자유투로 이어진 단체게임에서 중부올스타의 팔굽혀펴기 첫 주자로 나섰다. 위 감독이 팔굽혀펴기 10회를 성공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게임. 양복차림으로 열심히 팔굽혀펴기를 했다. 하지만 다음 단계에 지뢰가 숨어있었다. 소속팀 선수 양지희였다. 양지희는 지난 겨울 위 감독 밑에서 실시했던 혹독한 훈련이 생각났는지 맥없이 훌라우프를 실패하고 말았다. 그렇게 위 감독은 또 엎드리고 엎드렸다. 팔굽혀펴기를 정확히 43개나 하고 나서야 사회자의 권한으로 미션에서 해방되는 기쁨을 만끽했다. 지난해 올스타전 당시 신한은행 코치 신분으로 팬들을 위해 익살스러운 코트 청소부로 변신했던 위 감독의 투혼은 2년 연속 돋보였다.
이날 경기에서 16득점하며 중부올스타의 승리를 이끌어 2년 연속 올스타전 MVP에 선정된 김정은(하나외환). 김정은은 4쿼터 소속팀 동료 외국인 선수 샌포드와 흥에 겨워 어깨를 부딪히는 세리머니를 시도했다 코트에 참혹하게 나뒹굴어야 했다. 샌포드의 가공할 만한 파워를 계산하지 못했던 것. 굴욕의 순간이었지만 김정은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전 세계를 강타한 가수 싸이의 말춤은 기본. 선수들은 팬들과 함께 말춤을 추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역시 프로, 웃음기 사라진 선수들 깜짝 작전까지 구사하다
올스타전답게 초반 양팀 선수들의 플레이에는 긴장감이 감돌지 않았다. 공격을 시도하는 상대 선수들을 열심히 막기보다는 멋진 플레이를 독려하 듯 찬스를 내주는 모습이었다. 평소에 골밑에서 치열한 전투를 펼쳐왔던 외국인 선수들은 소원이었다는 듯 쏘지 못하던 3점슛을 계속해서 시도햇다.
그런 양팀의 경기에 불이 붙기 시작한 것은 3쿼터. 3쿼터 초반까지 경기를 끌려가던 중부올스타 선수들을 자극한게 있었으니 남부올스타 변연하(KB국민은행) 3점 퍼레이드였다. 2쿼터까지 4개의 3점슛을 터뜨린 변연하는 3쿼터 시작하자마자 연속 3개의 3점포를 터뜨렸다. 이 때부터 중부올스타 선수들의 눈빛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팀의 패배도 막아야 했고, 상대팀 선수에게 올스타전 MVP 영광을 내주는 것도 배아팠다. 올스타전에서는 보기 힘든 깜짝 작전도 나왔다. 같은 포지션의 슈터들이 절정의 슛감각을 과시한 변연하의 전담 수비수로 등장했다. 정규리그 경기 승부처에서 나올 법한 밀착방어. 이 때부터 변연하의 외곽포가 침묵하기 시작했고, 양팀의 점수차도 좁혀지기 시작했다.
65-63 남부올스타의 2점차 리드로 시작된 4쿼터. 선수들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진 건 오래 전이었다. 정규리그 경기를 방불케하는 접전이 벌어졌다. 위성우 감독과 임달식 감독도 4쿼터에는 별다른 교체 없이 각 포지션에서 최고의 컨디션을 자랑한 선수들을 투입하며 열기를 후끈 달아오르게 했다.
마지막까지 알 수 없던 승부는 샌포드와 신정자(KDB생명)가 맹활약한 중부올스타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종료 직전 임영희(우리은행)의 쐐기 3점포가 터지자 중부올스타 벤치의 우리은행, 하나외환, KDB생명의 선수들은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차지한 듯 환호했다. 그리고 코트에 나와 어깨동무를 하고 빙빙 돌며 기쁨을 만끽했다. 86대80 박빙의 승부였다.
경산=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