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 소아청소년과 진료실 앞. 최근 며칠 전부터 병원은 발 디딜 틈 없을 만큼 소아환자가 급증했다. 단순 감기에서부터 독감, 노로바이러스 장염까지 최근 유행하는 질병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가 늘어난 탓이다. 기존과 다른 형태를 띠는 바이러스와 인플루엔자로 인해 기존보다 증상이 심한 것은 물론 27년 만의 한파로 예년보다 계절성 질환의 유행시기가 보름 이상 빨라졌다.
▶연이은 독감·노로바이러스 주의보 발령
질병관리본부는 16일 우리나라도 독감이 유행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발표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돌고 있는 인플루엔자는 H1N1으로, 미국에서 유행 중인 H3N2와는 차이가 있지만 6일에서부터 12일가지 의료기관을 찾은 환자 1000명 중 독감 의심 환자가 4.8명으로 유행기준인 4.0명을 넘어 유행주의보를 발령했다고 밝혔다.
이어 17일에는 노로바이러스 주의보가 내려졌다. 질병관리본부는 지난해 수인성식품매개질환 유행 원인균을 조사한 결과 검출건수가 49건으로 전년 대비 88.5% 증가했다고 발표하고 3월까지 유행할 것으로 전망했다.
▶추운 날씨로 유행 시기 빨라지고 증상 심해
보건 당국의 주의보 발령을 증명이라도 하듯 서울의 대학병원은 노로바이러스와 독감 환자가 몰리면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실질적으로도 한림대학교강남성심병원은 호흡기내과를 비롯해 감염내과, 소아청소년과 외래 환자수가 급증했다. 지난 12월 마지막주에 비해 외래 환자수가 매주 10% 이상씩 늘었다. 즉, 환자가 전월 대비 3배 이상 증가한 것.
그중에서도 초겨울부터 일기 시작한 노로바이러스는 한파와 맞물려 기승을 부리고 있다. 어린이들 사이에서 유행이 돌고 돌면서 어린이집 곳곳은 결원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노로바이러스 감염에 걸려 입원한 어린이와 감염을 우려해 등원을 포기한 아이들까지 더해져 정원 모두가 출석하는 날이 현저하게 줄었다. 더욱이 국내에서도 영국과 호주, 일본, 미국 등지에서 보고된 GII-4 변이주(Sydney-2012)가 발견되는 등 증상이 더 심해졌다. 지속시기도 더 길어졌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노로바이러스의 경우 월별 발생분율은 2월이 52.2%, 3월 45.5%, 11월 42.1% 순으로 2월이 가장 높지만 올해는 최근 4주간 바이러스 검출률이 42.8%나 됐다. 이는 최근 4년간의 평균 검출률보다 30.8%나 높은 수치다.
지난 18일 한림대학교강남성심병원 소아청소년센터를 찾은 김수민(34·여)씨는 "어린이집에서 노로바이러스 장염에 걸린 아이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맞벌이 특성상 결원할 수 없어 보냈다가 결국은 옮았다"며 "밤새 물을 먹이고 증상을 지켜봤지만 머리가 아프고 토를 심하게 해 아침 일찍 병원을 찾았다"고 말했다.
독감 역시 비상이다. 증상이 있는 환자는 물론 미국 독감 뉴스를 접한 이들이 지금보다 확산될 것을 우려해 예방접종을 하고자 병원을 찾고 있다. 병원 내 장기 환자 중 독감 예방접종 시기를 놓친 환자와 보호자들 역시 예방접종을 위해 외래 진료를 받을 만큼 독감주의보의 여파는 거센 편이다.
물론 1월은 독감 발생률이 높아 의례적으로 독감 환자가 많지만 특히 올해는 초겨울이 비교적 따뜻했던 지난해보다 그 시기가 보름 가까이 빨라졌다.
이재갑 한림대학교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올해는 27년만의 한파로 인해 독감 유행 시기도 지난해에 비해 보름 가까이 빨라진 것으로 보인다"며 "지난해는 1월 중순부터 독감 환자가 급증한 반면 올해는 1월 초부터 그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예방백신 없는 노로바이러스, 주의하는 게 상책
10년 전만 해도 겨울철에 발생하는 장염은 로타바이러스와 아스트로바이러스, 캘리시바이러스, 아데노바이러스 등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로타바이러스는 서울지역에 거주 중인 어린아이의 설사 원인 중 47%를 차지할 만큼 비중이 컸다. 그러나 백신이 개발되고 예방접종이 시작되면서 로타바이러스의 발병률은 현저하게 줄었다.
최근에는 노로바이러스가 기세를 부리면서 이로 인한 환자가 부쩍 늘었다. 이는 기온이 내려가면서 바이러스의 지속기간이 길어진 데다 전 세계에 걸쳐 산발적으로 발생하는 등 유행적인 면이 큰 탓으로 분석된다. 더욱이 노로바이러스는 60도 이상의 온도에서 30분 이상 가열해도 죽지 않을 만큼 생존력이 강해 추운 날씨와 더해져 감염률이 높다.
증상은 식중독이나 장염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설사와 구토, 발열증상 등이 대표적이다. 로타바이러스와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구토와 두통은 심한데 반해 고열과 설사 증상은 약한 특징이 있다. 특히 연령에 제한을 두지 않아 성인도 걸릴 수 있다. 하루 정도의 잠복기 이후 증상이 나타나는 게 일반적이다.
노로바이러스는 극심한 증상을 제외하고 대부분 3~7일 내에 자연적으로 좋아진다. 그러나 탈수가 심하거나 나이가 어린 경우에는 입원 치료를 요할 수도 있다.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탈수증상을 막기 위해 수액을 맞거나 수분을 섭취한다. 또 노로바이러스에 걸린 환자의 구토물과 물건을 통해서도 전염될 수 있는 만큼 인파가 몰리는 곳은 삼간다. 외출 후 손발을 씻고 양치질을 해 감염을 막는 것도 필요하다.
이지현 한림대학교강남성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노로바이러스는 예방할 수 있는 백신이 없어 개인적인 위생수칙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며 "면역력이 약한 어린이가 주로 걸리는 만큼 증상이 있을 경우 어린이집 등원을 중단하는 등 집에서 쉬게 해 더 이상 전염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미국 독감과 유형 달라도 예방접종은 필수
독감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의해 생기는 급성 호흡기 질환으로 감기보다 증상이 심하고 전염성이 강하며 단기간 내에 유행한다는 특징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4월까지 발생한다.
독감은 신종플루와 같이 변종 인플루엔자가 발생한 게 아니라면 60% 이상을 예방접종으로 예방할 수 있다. 물론 영유아나 만성질환자 등은 확률이 떨어질 수 있으나 현재로서는 개인위생을 철저히 하는 것과 최선의 방책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국내 의료기관에서 접종된 인플루엔자 백신은 미국에서 유행 중인 H3N2 외에도 현재 국내에서 돌고 있는 H1N1과 봄철에 대두되는 B형 인플루엔자도 포함하고 있어 주사를 맞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항원이 접종일로부터 짧게는 3개월, 길어야 6개월인 만큼 초가을과 같이 이른 시기에 주사를 맞았다면 사라졌을 수도 있어 재접종해야 한다. 보통 독감 예방접종은 10~11월에 맞는 것을 권장하지만 4월까지 독감이 생길 수 있는 점을 감안하면 주사를 맞았다고 해서 100% 안심할 수 없다. 나성률 기자 nas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