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최강 안산 신한은행을 적지에서 극적으로 잡아내며 7연패의 사슬을 끊어낸 여자프로농구(WKBL) 구리 KDB생명이 일주일 만에 외국인 선수 카이저가 빠진 청주 KB스타즈를 적지에서 대파하고 2연승을 달렸다.
KDB생명은 22일 청주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청주 KB스타즈와의 2012-2013 여자프로농구 4라운드 경기에서 부상에서 돌아와 '더블더블'을 기록한 팀의 간판 신정자(19점 11리바운드 5어시스트)와 4개의 3점포를 터뜨린 김보미의 활약을 앞세워 82-62로 대승을 거뒀다.
이로써 KDB생명(7승 13패)은 4위 삼성생명을 한 경기 차로 추격했다.
반면 KB스타즈(9승 11패)는 단독 3위 자리가 불안해졌다. 카이저의 공백이 당분간 이어지고 국내파 선수들의 체력적 부담이 점점 누적될 것을 감안한다면 앞으로가 더 문제다.
이날 경기는 한 마디로 KDB생명의 플레이오프 진출을 향한 대대적인 반격이 시작됐음을 직감할 수 있는 경기였다.
경기 전 KDB생명 이옥자 감독은 상대인 KB스타즈가 비록 외국인 선수 카이저가 부상으로 빠진 상황이지만 변연하, 정선화, 강아정, 정미란 등 국내파 선수들 개개인의 기량이 KDB생명 선수들에 비해 앞서고 있고, 비키 바흐의 대체 선수로 팀에 합류한 로빈슨이 아직 적응기에 있는 선수임을 감안할 때 결코 방심할 수 없다며 경계심을 드러냈다.
하지만 막상 경기에 들어서니 이옥자 감독이 경기 전 내비쳤던 경계심은 혹시 지나친 엄살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KDB생명 선수들의 플레이는 공수에 걸쳐 KB를 압도했다.
코뼈 부상에서 돌아온 신정자와 로빈슨은 1쿼터 초반 다소 어수선한 팀 분위기를 다잡으며 기선제압의 선봉에 섰고, 포인트가드 김진영은 안정적인 경기 조율 뿐만 아니라 득점에서도 3점포 한 개를 포함해 9득점하며 팀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1쿼터 종료 스코어는 30-16 KDB생명의 14점차 리드. 30득점은 올 시즌 KDB생명의 1-2쿼터평균 득점 합계다. 이 같은 상황은 단순히 KB에 카이저가 빠졌다는 이유 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2쿼터 들어서도 이 같은 상황은 이어졌다. 2쿼터에는 김보미의 3점포가 불을 뿜었다. 김보미는 2쿼터에만 3점포를 3개나 꽂아 넣었고, 김보미의 3점포로 2쿼터가 마무리됐다. 2쿼터 종료 스코어는 50-30, KDB의 20점차 리드였다.
경기 직후 이옥자 감독은 이날 김보미의 플레이에 대해 "이제 진짜 김보미"라며 한껏 고무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비시즌 기간 동안 훈련 과정에서 김보미가 보여준 진면목이 이번 시즌 처음으로 실전에서 발휘됐다는 것.
이옥자 감독은 경기 직후 인터뷰에서 3쿼터 중반께 KB가 변칙 수비에 나섰다가 이내 철회하는 장면에서 '오늘은 편안하게 갈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밝혔지만 사실상 이날 경기는 2쿼터에서 김보미의 3점포가 폭발한 것이 KDB생명이 낙승을 거둘 수 있었던 결정적인 원인이 됐다고 보여진다.
3쿼터에서 KB는 '불꽃슈터' 변연하가 내외곽을 가리지 않는 올라운드 플레이로 득점을 이어가며 추격을 시도했지만 KDB생명은 신정자, 한채진, 김보미, 로빈슨의 착실한 득점이 이어지며 좀처럼 추격을 허용하지 않았다.
결국 4쿼터 6분여를 남기고 KB 정덕화 감독은 이틀 후 있을 KDB생명과의 리턴 매치를 위해 주전선수들을 벤치로 불러들이는 것으로 패배를 인정했다. 그리고 이날 경기는 2쿼터 종료 시점에서 벌어졌던 20점차가 그대로 유지된 채 마무리가 됐다. 최종 스코어는 82-62 KDB생명의 승리였다.
경기가 끝났을 때 KDB생명 선수들은 더 이상 7연패 끝에 꼴찌의 나락으로 떨어졌던 그 팀, 그 선수들이 아니었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팀으로 변모한, 사실은 이미 지니고 있던 잠재력을 폭발시킨 그 팀 그 선수들이었다.
사실 이번 2012-2013 시즌을 앞두고KDB생명이 리그 꼴찌까지 떨어지리라 예상했던 전문가는 거의 없었다.
지난 시즌 정규리그 2위를 포함해 2007-2008시즌부터 단 한 차례도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한 적이 없었고 조은주, 김보미가 부상으로 정상 컨디션을 회복하지 못한 채 시즌을 맞이한 것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전력누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시즌 개막 초반 3경기 연속 트리플더블을 기록한 팀의 간판센터 신정자의 맹활약을 앞세워 5할 승률을 유지할 때까지만 해도 이번 시즌에도 KDB생명은 이름값을 이어갈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이후 KDB생명은 팀의 주축 멤버들이 연쇄 부상을 당하며 순식간에 부상병동이 됐다.
우선 이경은이 피로골절로 팀 전력에서 이탈했고, 그 자리를 메우던 포인트가드 김진영이 허리 통증으로 결장하자 다시 그 자리를 메운 이경은이 또 다시 피로골절로 쓰러지면서 아직까지 코트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3라운드부터 팀에 합류, KDB생명의 구세주로 떠오르는가 싶었던 비키 바흐가 불과 3경기만을 소화한 채 부상으로 한국을 떠났고, 팀의 간판 신정자마저 경기 중 코뼈 골절로 전력에서 이탈했다.
팀의 주축 선수들이 잇따라 부상으로 쓰러지면서 KDB생명의 최고 강점이던 조직력은 무너졌다. 그 결과는 날개 없는 추락이었다.
급기야는 지난 10일 춘천 우리은행전 패배로 연패의 숫자는 '7'까지 늘어났고, 시즌 5승13패로 부천 하나외환과 함께 공동 꼴찌로 떨어졌다. 이후 하나외환이 시즌 첫 연승을 거두는 사이 KDB생명은 단독 꼴찌로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이 같은 최악의 상황에서 팀의 간판스타 신정자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KB전 승리 직후 인터뷰룸에 들어선 신정자는 "꼴찌로 내려가니 솔직히 마음이 편해 졌다"고 술회한 뒤 "내가 동료들에게 그랬다. 꼴찌 해도 되는 데 뭔가 한 번 소리를 한 번 질러보고 꼴찌를 하는 거랑 그냥 하는 거랑 다르지 않냐고… 그러니까 앞으로 더 자신 있게 하자고 했는데 그게 오늘 다른 동료들에게 간절함이 너무 컸던 것 같다. 오늘 많이 이겨 개개인에게 자신감이 더 생기는 경기였던 것 같다"고 밝혔다.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는 바닥에 까지 떨어져 보니 올라갈 곳에 대한 의지와 절박함이 살아나면서 결국 전체적인 플레이에 활기가 넘쳤고, 그 결과 경기에서 큰 점수차로 이기면서 자신감도 붙게 됐다는 것.
실제로 이날 경기에서 KDB생명 선수들의 플레이에는 곳곳에서 그런 절박함이 묻어났다.
KDB생명 선수들에게 이번 시즌은 그야말로 '롤러코스터 시즌'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시즌이다.
롤러코스터를 타 본 사람이라면 잘 알겠지만 롤러코스터가 서서히 레일 정점에 다다랐다가 급작스럽게 레일 가장 아래까지 엄청난 속도로 떨어지면 이후 다시 위로 올라갈 때도 빠른 속도를 그대로 유지한다. 또 떨어지는 속도가 빠른 만큼 위로 올라가는 정도와 속도도 빠르다.
KDB생명의 추락은 그야말로 브레이크 없는 롤러코스터 같은 속도였다. 이제 팀 전체적으로 경기력 자체적인 면이나 경기 외적인 면에서 재도약의 전기를 마련한 KDB생명은 추락한 속도에 준하는 속도로 도약할 조짐을 보여줬다.
KDB생명 이옥자 감독은 KB전 승리 직후 인터뷰에서 이번 시즌 목표에 대해 묻는 질문에 '플레이오프'라고 힘주어 말했다. 분명한 자신감이 묻어나는 뉘앙스였다. 이젠 해 볼만하다는 그런 자신감이 묻어 있는 어조였다.
KDB생명이 플레이오프 진출을 향한 순위경쟁에 본격적으로 합류하게 됨으로써 이번 시즌 WKBL은 그 어느 시즌보다도 매 경기 치열한 사투가 예상된다.
2012-2013 시즌은 이미 4라운드를 마쳤다. 하지만 KDB생명의 진짜 시즌은 이제부터다. <임재훈 객원기자, 스포토픽(http://www.sportopic.com/)>
※객원기자는 이슈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위해 스포츠조선닷컴이 섭외한 파워블로거입니다. 객원기자의 기사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