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um App

Experience a richer experience on our mobile app!

'그후 14년' 하석주 감독에게 백태클이란?

by

1998년 프랑스월드컵 조별리그 멕시코전. 전반 27분 프리킥으로 선제골을 터트린 그는 한국 축구 사상 첫 월드컵 선제골의 주인공이 됐다. 2분 뒤 그는 평생 잊지 못할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멕시코의 라미레스에게 백태클을 시도했고 주심이 꺼내든 레드카드에 고개를 떨궜다. 한국은 1대3으로 역전패했다. 16강 진출에도 실패했다. 선제골의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시도한 백태클로 그는 천당에서 지옥으로 떨어졌다. 여기까지가 축구팬들이 기억하는 '멕시코전 백태클 사건'이다.

그후 14년이 지난 2012년, 사건의 주인공 하석주 전남 감독이 '백태클'을 입에 올렸다. 한 때는 금지어였다. 하지만 이제는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는 추억이다. 그가 백태클을 언급한 이유는 세간의 오해를 바로잡고 전남 선수단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다.

▶백태클 못하는 하석주

"사실 나는 백태클을 전혀 못하는 선수였다. 당시 백태클을 하려고 했던게 아니라 수비하러 달려가던 스피드를 못 이겨서 그렇게 됐다.(웃음)."

선제골을 넣은 순간, 하늘을 나는 듯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의욕이 앞선 나머지 들어간 태클이 아니었다. 단지 태클을 할 줄 모르는 수비수의 가슴 아픈 실수였다. 축구 인생에서의 처음이자 마지막 퇴장이 바로 최고의 무대인 월드컵에서 나왔다. 경기 후 상벌위원회의 분석 결과 '고의성이 없었다'는 결론이 나왔다. 추가 징계는 피했다. 하지만 생애 첫 퇴장은 하 감독을 움츠리게 만들었다.

당시 바뀐 백태클 규정이 문제였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프랑스월드컵을 앞두고 백태클 금지를 적용하겠다고 공언했다. 하 감독은 당시 강화된 규정의 첫 희생양이 됐다. 예상치 못한 퇴장이었기에 더 충격이 컸다. 그는 "원래 남미 선수들이 엄살이 심한 것을 알고 있다. 액션이 심하다고 생각했고, 경고감도 아니라 생각했는데 레드 카드를 받았다. 당시 하늘과 땅이 뒤집힌 느낌이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귀국 후 일본으로 건너가기에 앞서 잠시 경기도 의정부의 지인의 집에 머물렀다. 밖에 나가기가 무서웠단다. 하지만 문전성시였다. 동네 꼬마들이 집 앞에서 그를 보기 위해 진을 쳤다. 사인 공세가 이어졌다. 그들의 관심은 하 감독을 다시 뛸 수 있게 만든 원동력이 됐다. 그는 "내 집도 아닌데 사람들이 집 주변에 몰려 근처 학교에서 사인회를 한다고 공지했다. 2000명이 몰렸다. 그들을 보면서 다시 힘을 얻게 됐다." 평생 잊지 못할 악몽 같던 시간들이었지만 백태클이 하 감독의 이름을 축구팬들에게 각인시킨 것만은 분명했다.

▶이제는 웃을 수 있다

프랑스월드컵 이후 하 감독은 TV를 켜기가 무서웠다. TV만 켜면 백태클 장면만 나오는 듯 했다. 심지어 애국가 영상에도 그 장면이 나온다. 14년이 지난 현재도 포털사이트에 그의 이름을 검색하면 백태클이 연관검색어로 나온다. 아직도 그 장면은 다시 보고 싶지 않다는 하 감독이다. 하지만 체감 온도는 다르다. "가끔 기사를 보면 댓글에 백태클 얘기가 많다. 웃고 넘긴다. 심지어 윤석영에게 백태클을 가르치지 말라는 얘기도 있다."

백태클은 그에겐 아픔인 동시에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싶지는 않은 과거다. 그래서 더욱 '백태클 금지'를 외친다. 하 감독은 "전남 선수들에게 백태클을 절대 가르치지 않는다. 아예 얘기도 꺼내지 않는다 "고 했다. 반면 해외진출을 노리는 제자 윤석영을 위해 '왼발의 달인'인 하 감독은 주특기인 '왼발 킥' 훈련을 시키고 있다. '달인'이 보는 윤석영의 킥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단계란다. 그는 "2년 전에 비해 좋아진 건 사실이지만 석영이는 아직도 킥을 하는 준비 과정이 길다. 임팩트 순간이 짧아야 상대 수비에게 걸리지 않고 크로스를 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하성룡 기자 jackiech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