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3년 몽골 수도인 울란바토르에서 비행기를 타고 두 시간을 가야 도착하는 바양찬다만 지역의 한 집에서 전기 누전으로 인한 화재가 발생 했다.
당시 화재가 난 가정의 가족 다섯 명은 밤잠을 자고 있던 중이었다. 화재로 인해 이 집의 아버지는 사망 했으며, 잠양수릉이라는 이름을 가진 두 살배기 막내 아들은 삼촌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하지만 화마는 그 어린 아이에게 얼굴과 팔, 손, 다리 등에 큰 화상을 남겼다.
잠양수릉은 화재사고 후 해마다 성장했지만 얼굴과 목에 구축성 반흔이 심해 고개를 들면 얼굴 왼쪽과 입이 심하게 틀어지고, 왼쪽 손목과 손가락들이 손등쪽으로 90도 이상 제껴져서 전혀 사용이 불가능했다. 오른쪽 손 또한 화상으로 인한 후유증이 심해 옷을 입고 벗거나, 단추를 끼우는 일을 스스로 못할 정도가 되었다.
구축성 반흔 이란 화상으로 인해 피부의 넓은 부위가 화상손상을 입었을 때 흉터 전체 부위가 당겨지고 오그라지는 현상을 말한다.
당시 잠양수릉은 화상으로 인해 볼품 없는 얼굴과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평소 수줍음을 많이 타고, 자신감이 없이 고개를 푹 숙이고 생활했다. 또한 외출 시에는 마스크를 착용하고 밖으로 나가야만 마음이 편했을 정도로 내성적인 성격을 갖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기본적인 생리욕구인 배설을 위한 자세가 불가능해 생활에 불편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잠양수릉이 8살이 되던 해인 2001년, '기적'이라고 칭할 만한 일이 벌어졌다.
잠양수릉이 몽골, 콜롬비아 등 저개발 국가에서 이동 진료를 하는 가톨릭해외의료선교단의 김중호 신부에게 발견되었던 것, 김 신부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이자 전문의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의사였다.
김 신부는 잠양수릉을 보자 마자 즉시 성형외과 안상태 교수(성형외과)에게 의뢰하였으며, 안 교수는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고 1차 수술을 시작했다.
안 교수는 그 당시 기억을 떠올리며 "전신에 거의 모든 부분이 화상을 입고, 이식할 피부를 채취할 수 없어 두피와 등에서 얇은 피부를 떼어내고, 동종진피를 이용해 목과 양측 손을 펴는 수술을 어렵사리 마쳤다"고 회고했다.
2001년부터 시작된 안 교수와 잠양수릉의 인연은 두번째 수술을 시행한 2004년으로 이어져, 왼손의 오그라진 피부를 펴기 위해 피부조직과 함께 혈관과 신경 등을 같이 떼어내 필요한 부분에 이식하는 측두근막 유리피판술과 이마와 엉덩이부분에 피부이식술을 시행했으며, 지난 11월 2일 마지막 수술을 위해 병원을 찾았다.
잠양수릉은 어느덧 22세의 건장한 청년으로 성장했으며, 더 이상 자신감 없이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던 내성적인 성격은 자신감 넘치고 명랑하게 변해있었다. 특히 자신을 괴롭히던 정신적인 외상후 후유증을 이겨내고, 몽골 최고의 IT전문가가 되기 위해 몽골의 한 대학에서 컴퓨터 관련 전공을 이수하고 현재 몽골의 한 회사에서 컴퓨터 관리 업무를 하고 있다.
잠양수릉은 "그간 병원에서 제공한 1,2차 수술로 인해 잃었던 신체의 기능을 점차 회복했고, 자신감을 얻게 되어 꿈과 희망을 가지고 대학까지 진학하게 되었다"며, "여유가 될 때 마다 자신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자원봉사에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마지막으로 이뤄진 이번 수술이 "오른쪽 눈썹위의 구축으로 눈이 잘감기지 않고 오른쪽 목과 입술이 당겨 내려오는 증상과 왼쪽 무릎 뒤의 부분적 궤양을 치료하기 위한 것으로써 이식된 피부를 안정되게 고정하기 위한 눈썹과 목, 입술에 전층식피술과 왼쪽 무릎 뒤에 부분층식피술을 시행했다"고 밝혔다.
또한 "전체적으로는 환자의 상태가 현저히 호전되어 양손을 편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앉고 서는데 어려움이 없는 등 기능적인 불편함도 크게 개선되었다"고 말했다.
한편 잠양수릉은 모든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크게 개선된 신체 기능과 함께 지난 17일 오전 퇴원했다. 병원은 잠양수릉의 총 3회, 5500여만원의 수술비 전액을 지원했다.나성률 기자 nasy@sportschosun.com
◇몽골환자 잠양수릉이 수술을 집도한 안상태 교수(성형외과) 및 병원관계자와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