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요즘 처가집에 들어와있어요."
KIA 이범호는 요즘 서울에 살림을 차렸다. 간혹 지방구단 소속 선수들의 경우 골든글러브 시상식 등 각종 행사가 많은 12월에 한동안 서울에서 지내는 경우도 있긴 하다. 이때는 며칠 간 호텔을 이용하거나 지인의 집에 머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범호는 좀 다른 케이스다. 아예 12월 한 달간의 장기체류를 위해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처가집에 들어갔다. 그래서 이범호는 현재 한창 '처가살이' 중이다.
무슨 이유에서일까. 광주에는 엄연히 자기 집도 있고, 대구에는 부모님이 계시는 본가도 있다. 그럼에도 이범호가 '처가살이'를 택한 것은 바로 내년 시즌을 대비해 '강한 몸'을 만들기 위해서다. 서울에서 스포츠 의학과 트레이닝 부문에 정통한 지인의 도움을 받아 체계적인 개인 훈련을 하려는 목적으로 광주 집을 떠나 서울의 처가로 들어간 것이다. 지난 2년간 부상에 시달리는 바람에 자기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이범호가 2013시즌에 대해 얼마나 큰 각오를 하고 있는 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범호가 서울로 옮겨온 것은 11월 말 마무리 캠프에서 돌아온 직후였다. 긴 부상을 털어내고, 상당히 좋은 성과를 거둔 마무리 캠프를 마친 이범호는 계속 몸상태를 끌어올리고 싶어했다. 이때 서울의 지인들이 도움의 뜻을 밝혔다. 12월은 철저히 개인 훈련의 시간인데, 아무래도 부상에서 벗어난 직후이다보니 조금 더 전문가의 도움이 절실했던 시기다. 이범호는 고민없이 서울의 처가로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그러는 것이 더욱 편하게 운동에 집중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선수들의 경우 각종 행사와 시상식에 불려다니느라 분주했던 12월이다. 그러나 이범호의 12월은 매우 단촐했다. 가족과 운동, 딱 이 두 가지 키워드만이 그의 생활을 지배했다. 이범호는 "마무리 캠프가 끝난 후 잠시 가족 여행을 다녀온 것을 제외하고는 매일 개인운동에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범호의 일과는 단순하다. 오전에 서울 신사동의 한 피트니스 클럽을 찾아 개인 트레이닝을 한다. 저녁 때 운동이 끝나면 곧장 집으로 돌아와 가족과 시간을 보낸다.
이범호가 이렇듯 단순한 일상의 '처가 살이'를 택한 것은 역시 2013시즌의 부활을 위해서다. 2011년 1년 간의 일본 생활을 청산하고 KIA 유니폼을 입은 이범호는 시즌 초반부터 팀의 강력한 중심타자로 자리잡았다. 2011시즌 KIA가 전반기를 1위로 마친 원동력은 이범호의 가세에서 비롯됐다고 할 정도다. 그러나 그해 8월 7일 인천 SK전에서 햄스트링 부상을 당하며 '악몽'이 시작됐다.
한화 시절이던 지난 2008년 615경기 연속 출전 기록을 달성하며 '철인'으로까지 불렸던 이범호다. 팀과 본인 모두 부상은 쉽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생애 처음 경험하는 큰 부상인 탓에 이범호는 쉽게 회복되지 못했다. 조금 나았다가 재발하곤 했다. 올해 역시도 스프링캠프부터 착실히 몸을 만들었지만, 양쪽 다리의 햄스트링과 허리 등의 부상이 이어지며 42경기 밖에 뛰지 못했다. KIA가 포스트시즌에 오르지 못한 원인 중 하나로 이범호의 부재가 손꼽히는 이유다.
다른 누구보다도 본인 스스로가 아쉽고 속상해하고 있었다. 이범호는 "2012년은 정말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을 정도로 괴로운 한 해였다"면서 "다행히 이제는 몸이 아프지 않게 됐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분이다. 이 기분이 내년에도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범호의 2013시즌 목표는 일단 '부상없이 많이 뛰는 것'이다. 구체적인 목표를 밝힌다는 것이 현재로서는 무의미하다. 이범호 정도의 네임밸류를 가진 선수라면 그저 다치지 않고 많은 경기에 나가면 성적은 따라오게 돼 있다. 이범호는 "가장 우선 내년 1월부터 시작되는 스프링캠프를 무사히 마치는 것이 1차 목표다. 현재의 몸상태라면 무난하게 캠프를 마무리하면서 시즌 준비를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자신감있는 밝은 목소리로 선전을 다짐하는 이범호의 2013시즌이 기대된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