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중순 마요르카전에서 터뜨린 동점골은 소속팀 셀타 비고를 강등권에서 건져냈다. 그로부터 열흘 뒤 국왕컵에서 작렬한 선제골은 셀타를 16강으로 이끈 대역전극의 신호탄이 됐다. 각각 90분, 120분을 가득 채워 뛰면서 골까지 뽑아냈지만, 그 외 경기에선 기대만큼 기회를 잡지 못했다. 지난달 26일 사라고사전 6분, 이번 달 2일 레반테전 5분, 그리고 9일 빌바오전에서는 교체 명단에만 이름을 올린 게 전부였다. 그간 사정이 좋지만은 않았으니, 레알 마드리드와의 국왕컵 16강전 1차전에 선발로 출격한 박주영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보이지 않던 박주영이 다시 나타났다
최근에 펼쳐진 사라고사전, 레반테전, 빌바오전. 셀타의 수장 파코 에레라 감독은 박주영을 벤치 멤버로 활용한 대신 아스파스를 최전방에 올려놓고 크론델리와 아우구스토를 좌우에 배치한 뒤,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에 엔리케나 베르메호를 번갈아 투입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 밑을 지탱하는 수비형 미드필더 라인에는 로페즈-오비냐가 건재했다. 그런데 한 가지 변수가 생겼으니, 빌바오전을 앞두고 로페즈가 부상으로 이탈한 것. 부랴부랴 인사를 투입해 오비냐의 짝으로 삼았지만 결과는 좋지 못했다.
본래 탄탄함이 부족했던 중원에 부상자까지 속출했다. 이러한 팀 사정상 수비 분담의 성향이 그리 강하지 않은 박주영을 활용한다는 건 적잖은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었다는 생각이다. 이 선수와 아스파스가 위로 올라가 있을 때 팀 밸런스가 버텨낼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고, 그 결과 득점력에 수비 가담 능력까지 지닌 베르메호가 박주영 대신 선발로 간택받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고 최전방의 자리를 노리자니, 팀 내 가장 확실한 에이스인 아스파스보다 비교 우위에 선다고 보기도 어려웠던 게 박주영의 입지였다.
그런 에레라 감독이 이번 레알전을 앞두고선 또 다른 변화를 시도했다. 왼쪽에서 뛰던 크론델리를 오비냐의 짝으로 삼은 것. 또, 아우구스토가 공격 시엔 오른쪽 측면 높은 지점까지 올라가면서도 수비 시엔 수비 라인 앞까지 내려와 수적 싸움에 가세했다. 라인업 상 상대가 전력을 100% 모두 쓴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레알'이었다. 그 팀을 상대로 괜찮은 퍼포먼스를 펼쳤다는 건 상당히 고무적이었다. 한 경기로 정확한 평가는 어렵겠지만, 크론델리의 넓어진 활용 폭과 박주영, 아스파스의 공존 가능성을 볼 수 있었다.
▶공간 침투에 이어 동료들과의 호흡까지
오랜만에 주어진 선발 출장 기회, 박주영으로선 확실한 눈도장이 필요했다. 우측의 아우구스토가 아래로 많이 내려가주었던 반면, 좌측의 박주영은 주로 윗선에 남아 왼쪽의 공격 기회를 노렸고, 이는 어느 정도 맞아들어갔다. 패스를 받을 수 있는 빈공간으로 재빠르게 뛰어들어 공격 기회를 창출해낼 수 있는 능력만큼은 여전했다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받을 경기였다. 레알이 뒤로 물러난 경기를 하지 않았기에, 상대 수비를 등지고 몸을 맞대며 비비는 플레이보다 공간으로 뛰어들어가는 박주영의 장기도 부각이 됐다.
이와 더불어 이번 레알전을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이유가 한 가지 더 있으니 동료들과의 호흡에서도 한결 나아진 모습이었다는 것. 아스파스가 측면으로 크게 돌거나, 베르메호가 수비에 가담함과 동시에 아랫 선에서 동료들과의 연계 플레이를 통해 상대 진영으로의 전진을 도울 때, 박주영은 종종 중앙으로 뛰어들어가거나 반대쪽 측면으로 돌아들어가는 움직임을 자주 보였다. 개인기나 드리블 돌파를 통한 것이 아니라 이렇듯 동료들과의 호흡에서 기회를 꾸준히 잡았다는 것은 분명 긍정적인 신호였다.
▶보다 많은 골, 보다 많은 출장을 위해
4-2-3-1 시스템에서 최전방의 1이든, 혹은 3의 중앙이든 측면이든, 박주영에게 주어진 제1 미션은 '골'이다. 그런 점에서 결정적 기회를 가장 많이 잡았던 박주영에게 '결과'의 잣대를 들이밀었을 때 남는 아쉬움은 여전히 크다. 인상적이긴 했는데, 그 인상이 모든 이들의 뇌리에 박힐 정도로 강렬하진 못했던 탓. 눈에 많이 띄었던 것을 뒤집어 생각해 보면 그만큼 결정력 부족의 문제를 노출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비가 많이 와 임펙트를 정확히 하기 힘든 경기였음을 잘 알지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 번의 찬스 정도만 잡았다면 향후 입지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싶다.
흔히 붙박이 주전으로서 매 경기 쉬지도 못하고 팀에 헌신하며, 감독의 사랑과 팬들의 관심을 독차지하는 선수들에게 '노예'라는 수식어를 붙여주곤 한다. 부정적인 원 뜻과는 달리 팀 내 중요한 선수, 없어서는 안 될 선수라는 '기분 좋은' 의미로 통용되는 단어다. 아스널에서 뛰지 못했던 설움을 털어내려면 아직도 멀고 먼 박주영, 그 시절을 생각하면 방전되기 직전까지 즐거운(?) 혹사를 당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그동안 꾸준히 경기에 나서지 못했던 것 치고는 나쁘지 않은 폼이었던 만큼 앞으로 더 많이, 더 자주 볼 수 있길 기대해본다. <홍의택 객원기자, 제대로 축구(http://blog.naver.com/russ1010)>
※객원기자는 이슈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위해 스포츠조선닷컴이 섭외한 파워블로거입니다. 객원기자의 기사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