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높은 벽을 실감한 울산 현대가 내년시즌 새판을 짠다.
이미 예견된 수순이다. 올시즌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우승 멤버의 절반 이상이 전력에서 빠져나간다.
당장 이근호(27) 이 호(28) 이재성(24) 등 삼총사가 군입대를 앞두고 있다. 17일 논산훈련소에 입소한다. 클럽월드컵은 이들에게 고별 무대였다. 이 호는 12일 일본 J-리그 우승팀 산프레체 히로시마와의 대회 5~6위 결정전(2대3 패)이 끝난 뒤 눈시울을 붉혔다. 선수들이 모두 그라운드를 빠져나간 뒤에야 라커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일전 참패로 축 처진 분위기 속에서 침묵의 인사를 건넸다. 동료들과 일일이 악수와 포옹으로 작별을 고했다. 이근호는 "후회는 없다. 한 경기 결과만 놓고 보면 아쉽지만, 지난 1년을 돌이켜보면 정말 뜻깊은 한해였다. 열심히 했다. 챔피언스리그 우승이라는 좋은 성과도 올렸다. 올시즌 울산 선수들은 의미가 깊은 멤버들이다. 군입대까지 남은 기간 좋은 추억거리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고공 폭격기' 김신욱(24)은 유럽행을 겨냥하고 있다. 현재 독일과 프랑스 등 복수의 구단에서 러브콜이 오고 있다. 울산과의 계약은 1년이 남은 상황이다. 그러나 이번 겨울이 해외 진출의 적기라고 생각하고 있다. 올시즌 '아시아는 좁다'라는 것을 실력으로 증명했다. 김신욱은 "내가 해외 무대로 나가고 싶은 이유는 나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다. 군대 문제가 걸려있어 오래 나가고 싶은 마음은 없다"며 "일단 부딪혀보고 '힘들구나'라는 것을 느낀 뒤 나 자신을 채찍질하고 싶다. 군입대를 곧바로 앞두고 오는 것보다 체험을 해보고 성과를 낸 뒤 돌아올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외국인 공격수들은 협상 중이다. 이번 여름 울산 유니폼을 입은 하피냐(25)는 6개월 임대 이후 1년 연장(옵션)이라는 조건으로 계약을 맺었다. '특급조커' 마라냥(28)도 계약이 종료된다. 당초 6개월 임대로 울산에 둥지를 틀었던 마라냥은 후반 조커로 나서 맹활약을 펼친 덕에 6개월 더 계약을 연장했다. 울산에서 3년간 활약한 에스티벤(30)도 올시즌을 끝으로 계약이 끝난다. 이승렬(23)도 시한부 인생이었다. 6개월 단기 임대였다. 올시즌 하피냐와 함께 영입돼 K-리그에서 존재감을 알렸다. 이들과의 협상을 진행하기 위해 울산의 고위 관계자는 일본에서도 쉴 틈이 없었다.
남은 이들 중에서도 떠나는 자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곽태휘(31) 김영삼(30) 김영광 김치곤(29) 김승용(27) 이 용 고슬기(26) 등이 범위에 속한다. 적잖은 챔피언스리그 우승 후유증에 시달릴 수 있다. 우승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고자 턱없이 높은 연봉 인상을 요구할 경우 오히려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올해 1월 괌 전지훈련 때도 곽태휘를 비롯해 이재성 최재수 등이 연봉 협상으로 다소 난항을 겪은 바 있다. 또 출전시간이 성에 차지 않은 선수들이 이적을 요청할 수 있다.
울산은 아시아 챔피언의 자격으로 클럽월드컵에 참가하느라 다른 K-리그 구단보다 새시즌 준비가 늦어졌다. 1월 초 괌 전훈을 떠나서도 선수 구성이 제대로 안될 가능성이 크다.
내년시즌 울산을 계속 지휘하게 된 김호곤 감독이 풀어야 할 숙제다. 김 감독은 2년 뒤 아시아 정상 재도전을 꿈꾸고 있다. 올시즌 클럽월드컵에서 구겨진 자존심을 회복할 기회를 노리고 있다. 그러기 위해선 내실을 다지고 발빠른 준비가 필요하다. 김 감독의 새판은 어떤 그림일까.
도쿄=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