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중국 우한에서 열린 제26회 FIBA 아시아농구 선수권대회 당시 이야기다. KBL 한선교 총재는 "국제대회에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몸싸움에 대해 파울콜을 신중하게 부는 것도 생각할만 하다"고 했다. 어지간한 몸싸움에 꼼짝 않는 국제 심판들의 '뚝심'에 당황한 표정을 짓다 짧은 영어로 항의하는 한국 대표팀 선수들. TV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장면이었다. 조금만 신체 접촉이 이뤄져도 곧바로 휘슬이 울리던 국내 리그와 꽤 다른 생소한 국제무대.
결국 개선이 이뤄졌다. 여러가지 룰을 국제 기준에 맞게 조정했다. 올시즌에 앞서 수비자 3초룰이 폐지됐다. 가벼운 몸싸움과 블록슛에서의 파울콜도 신중하게 불기로 했다. 바람직한 방향이다. 선수들은 조금 괴로울지 몰라도 한국농구의 국제대회 경쟁력 강화와 볼거리 제공을 위해서는 기꺼이 감수해야 할 선택이었다.
하지만 부작용도 있다. 변화의 과정. 시행착오가 따른다. '신중하게'라는 표현의 애매모호함 때문일까. 때론 모 개그 프로그램 유행어처럼 '신중해도 너~무' 신중할 때가 있다. 누가봐도 명백한 파울임에도 휘슬이 울리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다.
'문태영-양희종 몸싸움'도 그랬다. 13일 울산동천체육관에서 열린 모비스-KGC전. 3쿼터 6분25초를 남긴 시점에 KGC 양희종의 악착같은 밀착 수비에 막혀 부아가 치밀어 오른 문태영이 급기야 양희종을 뿌리치는 과정에서 짜증섞인 과격한 팔놀림으로 얼굴을 가격했다. 양희종은 왼쪽 얼굴을 움켜쥔 채 고통스럽게 코트에 나뒹굴었다. 하지만 3명의 심판 중 그 누구도 휘슬을 불지 않았다. KGC 벤치가 흥분했다. 이상범 감독은 "퇴장시켜야 하는 것 아니냐? 그냥 넘어갈거냐"며 심판에게 항의했다. 경기를 속행하려는 심판의 설득에 이 감독은 "콜이 안나왔다고 선수를 코트에서 때리는데도 그냥 넘어가는거냐?"며 어이없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문태영은 경기가 재개되기 전 벤치에서 양희종이 쓰러지는 장면을 우스꽝스럽게 흉내내며 '할리우드 액션'임을 암시했다. 양희종이 한껏 약오를만 했던 상황. 그는 남은 경기에서 보복 대응은 자제했다. 하지만 경기 후 기자회견장에서 "(문태영이) 다시 그런다면 참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나간 일, 농담처럼 웃으며 말했지만 감정이 남지 않았을리는 없다.
심판도 사람이다. 실수를 한다. 순간적으로 못 볼 수 있다. 판단이 어려워 휘슬 타이밍을 놓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일이 자주 있어서는 안된다. 자칫 남은 앙금이 향후 플레이 과정에서 물리적 보복을 불러 큰 싸움으로 이어질 수 있다. 수비자 3초룰 폐지 후 국내 선수와 혼혈 귀화 선수들 간 몸싸움이 과열되면서 감정의 앙금이 몸에 수은 쌓이듯 조금씩 축적되고 있는 시점. 국내 선수와 혼혈 선수는 성장 환경이 다르다. 배운 농구도 다르다. 서로 이해가 부족하면 부딪히기 쉽다. 극한 상황에서 극단적인 충돌을 막는 완충 역할의 선-후배 개념도 거의 없다. 지나치게 과격한 행위는 즉시 파울로 제재해야 한다. '페어플레이'를 강조하는 제도 변화의 흐름과도 맞다.
만에 하나 이번 사안이 '신중한 판정'의 연장선상이었다면 더 큰 문제다. '신중한'의 기준은 어디까지나 박진감 넘치는 경기의 흐름을 끊지 않는 '가벼운 몸싸움'에 한정돼야 한다. 이날 문태영의 동작은 가볍지는 않았다. 이날 심판진의 경기 진행은 썩 매끄럽지 못했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