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야구는 '투수 놀음'이란 말을 주로 한다. 일단 투수의 손끝에서 공이 출발해야 플레이 하나하나가 성립된다. 투구의 중요성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경기 중 그라운드엔 9명이 서있다. 투수는 그 중 한 명일 뿐이다. 하지만 26명의 엔트리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는 포지션이 투수다. 선발부터 중간, 마무리. 심지어는 필승조와 패전조(추격조)까지 나눠져 있다. 각자 맡은 역할이 있을 정도로 분업화가 돼있다.
하지만 연말 시상식에서 주목받는 이들은 선발투수 뿐이다. 선발투수조차도 트리플크라운이나 4관왕 정도는 해야 MVP 시상식에서 명함을 내밀 수 있을 정도다. 투수 분업화가 정착된 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불펜투수들이 대접받는 시대는 아직 오지 않았다.
SK 박희수가 이런 현실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했다. 박희수는 10일 열린 '카스포인트 어워즈'에서 대상 후보에 오른 뒤 "사실 생각보다 매스컴의 관심을 못 받아서 서운하다"고 말했다.
박희수는 올시즌 65경기에 등판해 8승1패 6세이브 34홀드에 평균자책점 1.32를 기록했다. 34홀드는 홀드가 공식기록으로 집계되기 시작한 2000년 이후 단일 시즌 최다 홀드 기록이다. 또한 박희수는 순수 불펜투수로 무려 82이닝이나 던졌다. 사실상 중간에서 리그를 지배한 이가 박희수였다.
하지만 이런 박희수도 MVP 후보엔 오르지 못했다. 다승 1위 장원삼과 평균자책점 1위 나이트만이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골든글러브 투수 부문 후보에 오르긴 했지만, 홀드 부문 타이틀 보유자 자격으로 오른 것이었다. 선발-중간-마무리라는 투수 분업화에도 불구하고, 황금장갑은 한 개밖에 없다. 불펜투수를 위한 상은 없는 것과 다름없다.
메이저리그엔 1976년 제정된 '롤레이즈 구원상'이 있지만, 아직까지 국내엔 순수 불펜투수를 위한 상이 없다. 중간계투로 '혹사' 수준의 등판을 해도 인정받을 곳이 없는 것이다. 오직 연봉협상 테이블에서 팀에 기여도를 인정받는 정도다. 사실 이마저도 2000년대 후반부터 찾아볼 수 있는 장면이다. 연봉고과 산정 시에도 선발투수에 한참 부족한 대접을 받았다.
박희수는 "중간투수로서 제 기준으로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홀드왕을 목표로 했는데 해냈다. 한 시즌 최다기록까지 세우다니 정말 가문의 영광"이라며 웃었다. 하지만 아쉬움은 감출 수 없었다.
이때 옆에 있던 '끝판대장' 오승환이 박희수를 거들었다. 그 역시 최고의 마무리투수 반열에 올라서는 동안 끊임없이 중간투수들도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말해왔다. 오승환은 "예전부터 인터뷰에서 많이 했던 이야기다. 박희수의 홀드 기록은 국내 신기록 아닌가. 이제 아마추어에서도 최다 세이브, 최다 홀드 기록을 노리는 투수들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박희수의 바람이 언제쯤 이뤄질 수 있을까. 메이저리그에서도 1992년 데니스 엑커슬리나 2003년 에릭 가니에 이후 불펜투수로 최고투수에게 주는 사이영상을 받은 투수는 없다. 20년 전과 9년 전 일이다. 투수가 수상하기 힘든 MVP는 92년 엑커슬리가 마지막이다.
하지만 빅리그엔 구원투수를 위한 상이 따로 있다. 우리에게도 묵묵히 자기 역할을 다하는 불펜투수들을 위한 상이 하나쯤은 필요하지 않을까.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