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청년들이 가장 선망하는 기업인 애플은 한때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은 적이 있었다. 1970년대 말 개인용 컴퓨터 '애플I'을 세상에 내놓을 때, 컴퓨터의 대중화에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곧 IBM 등 경쟁사가 치고 올라오는 과정에서 애플은 팔짱만 끼고 있다가 매출 급감과 소비자 외면이라는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헐값 매각설까지 떠돌자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결국 주주들에 의해 쫓겨나는 굴욕을 당했다. 하지만 애플과 잡스는 무너지지 않았다. 실패에서 '혁신'이라는 교훈을 얻었다. 이는 애플이 다시 일어나 아이맥과 아이폰이라는 혁신을 완성하면서 세계 최고의 IT기업으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됐다.
K-리그를 넘어 아시아 최강의 구단이라고 자부하는 수원 삼성(구단주 권오현)의 모기업은 세계를 무대로 애플과 특허전쟁을 벌이고 있는 재계 1위 삼성전자다. 그러나 최근 수원 삼성의 '꼴'은 매너리즘에 빠져 있던 애플의 초창기 모습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듯 하다. K-리그 4회 우승과 아시아클럽챔피언십 제패라는 옛 영광에 사로잡혀 있을 뿐, 혁신이라는 단어는 눈을 씻고 찾아 볼 수 없다. 올 시즌 네 차례 맞대결에서 3승1무로 앞섰던 슈퍼매치의 성적만 두고 "FC서울은 더 이상 라이벌이 아니다"라고 외친다. 그러나 서울은 최다관중 3년 연속 1위에 최고 구단이라는 타이틀을 얻으며 내실을 챙겼다. 올해는 K-리그 정상에 올라서면서 퍼펙트 우승을 달성했다.
반면 시즌 초 우승을 자신하던 수원 삼성은 4위에 그쳤다. 리그 3위 포항 스틸러스가 FA컵을 제패하면서 남은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티켓 한 장을 간신히 손에 쥐었을 뿐이다.
그에 마땅한 평가가 나왔다. 스포츠조선이 8일 세상에 내놓은 '2012년 K-리그 16개 구단 운영 능력 최종 평가'에서 서울(92.7점)보다 한참 아래인 58.2점(7위)에 그쳤다. 시민구단인 인천 유나이티드(60.6점·6위)보다 낮은 수치다. '일등주의'를 외치는 삼성이라는 이름값이 부끄러운 성적표다.
이에 대해 수원 삼성측에서 할 말이 많았나 보다. 곧바로 불만섞인 반응이 전해졌다. 수원 삼성측은 "경기력에서 뒤진 것은 사실이지만, 서비스나 구단 운영에서는 서울과 다를 것이 없다"며 서운한 감정을 드러냈다. 서울이 인구 1000만의 프리미엄을 누리는 만큼, 인구 100만 수원도 상황에 맞는 합당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16개 구단 중 최하점(3점)을 받은 연고지 밀착도 부분에 대해서도 "수원시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경기장 임대 문제는 관할단체인 경기도 측과도 조율을 해야 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속도가 느릴 뿐"이라고 항변했다. 이 과정에서 왜 '축구수도'라고 자부하는 수원 삼성이 관중동원 2위의 성적에 그쳤는지, 자신했던 경기장 임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지에 대한 분석이나 반성은 찾아볼 수 없다. 물론 구단 나름대로는 많은 노력을 했을 것이다.
시행착오나 부진은 일시적인 것이다. 고치면 된다. 아쉬움과 불만의 목소리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반성과 개선의 의지가 없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수원 삼성의 항변에서 이런 심각함이 느껴진다. "서울은 라이벌이 아니다"라고 외치는 목소리에서 서울보다 나은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매너리즘'까지 느껴진다.
굳이 서울과 비교 당할 이유가 없다고도 말한다. 시즌 중 이재용 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수원 삼성과 서울전을 운동장에서 지켜본 적이 있다. 라커룸을 찾아 선수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그 경기서 수원 삼성은 2대0으로 이겼다. 이런 몇경기를 갖고 말하면 곤란하다. 구단 가치에서 재계 8위인 GS(서울)가 1위 삼성보다 낫다는 점은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일 수 있다. 하지만 제3자의 객관적인 시각에서 냉정하게 말하면 마음이 많이 아플지 모르겠다. 적어도 축구에서 수원 삼성은 FC서울의 상대가 못된다. 더 가혹하게 말하면 서울과 더이상 비교상대가 아니다. 지금의 수원 삼성의 모습이라면 말이다.
올 시즌 K-리그에서는 서울 뿐만 아니라 포항(포스코) 울산(현대중공업) 제주(SK에너지) 등 지방 구단들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포항은 뛰어난 유소년 시스템을 유지하며 FA컵 우승이라는 결실을 맺었다. 울산은 ACL 제패에 이어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월드컵 진출까지 이뤄내면서 경기력 뿐만 아니라 K-리그 브랜드 홍보에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관중 불모지'로 여겨졌던 제주는 한때 패배주의에 빠졌다는 비난을 들을 정도로 흥행 부진을 보였다. 그러나 대표이사 뿐만 아니라 구단 전직원이 제주도를 헤집고 다니면서 지역정서를 이해하고 공략하는 노력으로 올 시즌 16개 구단 중 가장 높은 관중 증가율(45.4%)을 기록했다. 서울에서 열린 SK그룹 바자회에서는 직접 참여한 제주 선수단의 노력으로 물품이 일찌감치 동이 나기까지 했다. 모두 이름값을 빼고 혁신으로 허리띠를 졸라 매면서 얻은 결과물이다.
수원 삼성은 K-리그의 기둥이다. 팬들의 애정도 뜨겁다. 수원이 살아나야 K-리그 전체 흥행이 탄력을 받을 수 있다. 사명감이 크다. 애정과 기대를 갖고 하는 쓴소리에 섭섭하다고 할 것이 아니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자. 이건희 삼성 회장이 '마누라만 빼고 다 바꿔라'라고 한 것 처럼 수원 삼성에게 필요한 것은 철저한 자기 반성과 혁신이다. 그래야 K-리그도 산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