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청룡의 여신이 탄생했다.
임수정이 제33회 청룡영화상에서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무려 9년 만의 재회다. 임수정 본인도 자신의 이름이 호명된 순간 얼떨떨한 표정으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워낙 올해 한국 영화가 작품도 좋으면서 관객들의 사랑을 많이 받은 좋은 작품들이 많이 나와서 내가 그 중 후보로 올랐다는 것 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 영화 잔치에서 즐겁게 있다 가야지 이런 생각 했었다. 수상 소감도 준비가…"라고 말했다. 이어 "민규동 감독님, 류승완 이선균 선배님. 어느 누구보다 내가 상을 받길 원하셨다. 그래서 진짜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덕분에 내가 사랑스럽게 연기를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매번 후보에 자주 오르면서 진짜 후보에 오른것만으로도 기분좋다 했는데 막상 상을 받으니 더 좋다. 앞으로도 더 많은 것을 보여줄 수 있는 그런 한국의 여배우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사실 데뷔 당시엔 '미친 존재감'을 뽐내진 못했다. 비슷한 시기 잡지 모델로 활동했던 김규리 공효진 신민아 배두나 이요원 김민희 등이 영화 혹은 방송에 진출하며 이름을 알린 데 반해 임수정은 광고나 뮤직비디오에 몇 번 얼굴을 비췄을 뿐이다.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하지 않았다. "성향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현재까지 예능 프로그램 출연은 지양하고 있지만, 자기 PR이 중요한 신인 시절에는 분명 이례적인 행보였다. 대신 300번 정도 오디션에 떨어지는 쓴맛을 봤다.
공부에도 관심 없고, 고교 시절 본 연극 '리어왕'에 감명받아 연기를 시작했다던 임수정이 빛을 발하기 순간은 청룡과의 만남 이후부터다. 2003년 23세의 나이에도 동안 미모를 뽐내며 영화 '장화, 홍련'에서 여고생 수미 역을 따냈다. 수미는 계모(염정아) 밑에서 망상에 시달리는 가운데에도 동생(문근영)까지 챙겨야 하는 여고생. 청아한 목소리와 섬뜩한 표정 연기는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았고, 제24회 청룡영화상에서 신인여우상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이후로는 승승장구였다. 2004년 KBS2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에서 은채 역을 맡아 소지섭과 호흡을 맞췄다. "밥 먹을래, 나랑 뽀뽀할래. 밥 먹을래, 나랑 잘래. 나랑 잘래, 나랑 죽을래"라는 불후의 명장면을 남긴 이 드라마를 통해 임수정은 여배우로서 자신의 가치를 한층 높이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내 아내의 모든 것'을 통해 진가를 발휘했다.
'내 아내의 모든 것'은 남편(이선균)이 이혼을 위해 이웃에 사는 카사노바(류승룡)에게 아내를 유혹해달라는 부탁을 하며 벌어지는 해프닝을 그린 작품. 이 작품이 더 큰 의미가 있는 이유는 임수정을 '진짜 배우'로 기억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임수정이 '연기력 논란'에 휘말린 적은 없었다. 흥행 면에서도 나쁘지 않았다. '피아노 치는 대통령(2002년, 16만 3227명)', '…ing(2003년, 48만 3828명)', '싸이보그지만 괜찮아(2006년, 73만 9471명)',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2011년, 6만 6233명)'를 제외하면 '장화, 홍련(2003년, 314만 6217명)', '새드무비(2005년, 106만 6765명)', '각설탕(2006년, 144만 6820명)', '행복(2007년, 123만 9789명)', '전우치(2009년, 613만 6928명)', '김종욱 찾기(2010년 113만 638명)' 등은 모두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하지만 배우로서의 존재감이 두드러지진 못했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이후 멜로 액션 코미디 등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긴 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어색했다. '청순파 동안미녀'라는 타이틀이 부담스러웠던 탓인지 지나치게 극적인 캐릭터만을 선호했다. 캐릭터와 이미지의 부조화는 대중으로부터 큰 공감대를 이끌어내진 못했다. 결국 2007년 '행복' 이후로 연기 인생 1막을 마무리한다며 2년간의 공백기를 갖긴 했지만 이후로도 캐릭터에 대한 욕심은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모 화장품 CF 광고가 더 큰 공감대를 이끌어냈다.
그런데 '내 아내의 모든 것'을 통해 180도 달라졌다. '동안미녀', '청순파 배우'의 대표 명사였던 임수정이 솔직 당당한 독설가 정인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해 노브라에 하의 실종 패션으로 카메라 앞에 섰고, 속사포처럼 대사를 쏟아냈다. 여자들만이 알 수 있는 외로움, 그로 말미암은 수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 기복을 속 시원하게 풀어내며 공감대를 형성했다. 미혼인 그가 유부녀 연기를 하면서 공감을 받았다는 것은 여배우로서 연기 스펙트럼이 넓어졌다는 뜻이다. 그리고 청룡도 임수정의 손을 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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