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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우승에 침울했던 전북 '남은건 자존심 싸움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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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전북과 울산의 K-리그 41라운드. 경기전 만난 이흥실 전북 감독의 눈은 빨갛게 충혈돼 있었다. "스트레스 받으면 눈이 이렇다"는 이 감독의 설명이다. 시즌 막판까지 치열했던 우승싸움이 남긴 상처다. 그러나 끝까지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는 "우승 싸움은 무의미해졌으니 내년을 위해서라도 홈팬들에게 좋은 경기를 펼쳐 보여야 한다"며 유종의 미를 노래했다. 안방에서 열리는 남은 경기에서 '무조건 승리'를 약속했다.

울산전이 열린 전주성은 이날 수차례 들썩거렸다. 희망과 좌절이 공존했다. 상대인 울산은 클럽월드컵을 대비해 1.5군을 내세웠다. 주중 경기에서 주전 선수들의 체력을 아껴주겠다는 김호곤 울산 감독의 방침이었다. 손쉽게 승리를 거둘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전북은 전반에 이동국이 1골을 넣는데 그쳤고 울산에 3골을 허용하며 1-3 리드를 허용했다. 역전 우승 희망이 허공으로 날아가는 듯 했다. 그러나 전북은 이동국의 만회골과 에닝요의 동점골에 힘입어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운까지 따라줬다. 울산의 곽태휘가 후반 종료 직전 페널티킥을 실축했다. 페널티킥 선언 휘슬이 울리자 침울했던 전북 서포터스석에 다시 환호성이 넘쳐났다. 끝이 아니었다. 경기가 끝난 뒤 이 감독과 전북의 관계자들은 서울-제주전을 주목했다.

2012년 K-리그는 FC서울의 천하였다. '디펜딩 챔피언' 전북의 역전 우승 희망은 서울의 제주전 승리로 물거품이 됐다.

그러나 '디펜딩 챔프'로서의 자존심은 끝까지 지키겠다는 것이 이 감독의 생각이다. 당장 25일 적지에서 서울과의 일전을 치른다. 전북으로선 이 경기를 꼭 잡아야 하는 이유가 아주 많다. 먼저 자존심 싸움이 걸려 있다. 21일 제주전에서 우승을 차지한 서울은 25일 전북과의 홈경기에서 우승 시상식을 열기로 했다. 전북으로서는 패배를 헌납할 경우 우승 잔치 들러리가 되는 셈이다. 시상식에 앞서 서울에 일격을 가함과 동시에 자존심은 챙기겠다는 복안이다. 여기에 전북은 2010년 8월 25일 이후 서울전에서 승리의 찬가를 부르지 못했다. 6경기 연속(3무3패)으로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올시즌에도 세 차례 대결해 2무1패다. 내년 시즌을 위해서라도 서울은 꼭 넘어야 할 벽이다.

이 감독은 "남은 경기 중에 서울전이 가장 중요하다. (서울 징크스를) 올해는 무조건 끊고 가야 한다. 그래서 끝까지 긴장은 늦출 수 없다. 서울의 우승 잔칫상을 잘 차려줘야지"라고 덧붙였다. 서울전 승리로 잔칫상에 잿가루를 뿌리겠다는 뜻의 반어적 표현이었다.

이밖에 전북은 서울과 시즌 팀 최다골 기록도 경쟁 중이다. K-리그 41라운드가 끝난 현재 전북은 81골, 서울은 73골을 기록 중이다. 전북의 '닥공(닥치고 공격)'이 서울의 '무공해(무조건 공격해) 축구'보다 기록상 우세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길은 최다골 뿐이다. 또 데얀(서울)과 득점왕 경쟁을 펼치고 있는 이동국의 자존심도 세워줘야 한다.

이 감독은 "팀 최다골 기록은 가져가면 좋다. 이동국이 컨디션이 좋다. 최근 페이스만 놓고 보면 30골 점령도 가능하다"면서 이동국의 득점을 적극 지원할 뜻을 내비쳤다. 이날 2골을 넣으며 득점선두 데얀(30골)에 네골차로 접근한 이동국은 역시 서울전을 잔뜩 벼르고 있다. 그는 "서울전에서 우승 시상식의 들러리가 되지 않겠다. 1,2위 팀의 자존심 싸움이다. 허무하게 무너지지 않도록 준비를 잘하겠다"며 승리 의지를 불태웠다.

그동안 25일 열릴 예정인 서울-전북전은 '사실상 결승전'이라는 타이틀로 조명받아왔다. 더이상 결승전은 없다. 그러나 전북에겐 마지막 자존심을 살릴 최후의 기회가 남아있다. 서울전이다.

전주=하성룡 기자 jackiech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