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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경기'프로 승부사'김한윤"요즘도 지고나면 잠 못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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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경기에 지고 나면 밤새 뒤척인다."

400경기를 채운 서른여덟살의 '철인' 김한윤(부산 아이파크)의 말은 인상적이었다. 냉정한 승부의 세계에서 햇수로 16년을 보냈지만, 여전히 지고는 못사는 승부사다. 18일 제주와의 홈경기, K-리그 사상 9번째로 400경기를 채우고도 웃지 못했다. 1대2로 패했다. 400경기 출장기록의 기쁨보다 홈 9경기 연속 무승이 속상했다. "자일의 두번째 골 때 내가 발을 조금만 더 뻗었으면 막을 수 있었을 텐데…." 밤새 그장면이 생각나 잠을 이루지 못했다.21일 포항과의 홈경기를 앞두고 있다. 부산은 올시즌 포항에 강했다. 1승2무로 지지 않았다. 포항은 부산을 제외한 전구단을 상대로 승리를 맛봤다. 부산전 승리에 목숨거는 이유다. 김한윤은 "그래서 더 질 수 없다"며 전의를 불태웠다. 지난 3월 17일 첫 포항전에서 골을 넣었다. 비하인드스토리를 공개했다. "그날 내가 실수해 첫골을 허용했다. 지쿠에게 2골을 내준 후 그자리에서 땅을 파고들어가 숨고 싶을 만큼 부끄러웠다"고 했다. "후반 세트피스에서 필사적으로 헤딩골을 노렸던 건 어떻게든 그 미안함을 만회하고 싶어서였다." 부산은 김한윤의 만회골에 힘입어 포항과 2대2로 비겼다. 지인들은 종종 이야기한다. "중계화면에 비친 네 얼굴은 늘 화난 얼굴이더라. 이제 좀 즐길 때도 되지 않았느냐"라고. 하지만 김한윤은 아직도 즐길 수가 없다. 400경기 내내 치열하게 싸웠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했다. 무조건 이겨야 산다. 그라운드에만 들어서면 파이터가 되는 그는 프로다.

▶400경기 뛴 철인 "후배들에게 짐 될 땐 당장 관둘 것"

1997년 부천SK(현 제주 유나이티드의 전신)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한 김한윤은 16시즌동안 중앙 수비수와 수비형 미드필더를 오가며 터프하고 꾸준한 축구인생을 이어왔다. 김병지 최은성 이운재 등 골키퍼를 제외한 필드플레이어로는 K-리그 최고령이다. 만 38세인 올시즌 부산에서 33경기에 나섰다. 6년 전인 2006년 이후 처음 30경기 이상을 소화하며 '철인'의 면모를 과시했다. 1997~1999년, 2001~2005년까지 부천에서 173경기에 출전했다. 2000~2001년 포항에서 36경기, 2006~2010년까지 서울에서 131경기에 나섰다. 2010년 말 선수은퇴를 선언했던 김한윤은 안익수 감독의 러브콜로 부산에 둥지를 틀었다. 2011~2012년 60경기에서 리그 최강 부산 질식수비의 중심에 섰다. 터프한 플레이,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으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함을 온몸으로 보여줬다. 제2의 축구인생을 열어준 안감독을 '은인'이라고 표현했다. 안 감독은 "나는 돗자리만 깔아줬을 뿐, 그 위에서 멋진 춤사위를 보여준 건 한윤이"라는 말로 애정을 표했다. 안 감독은 김한윤에게 내심 500경기까지 바라고 있지만 본인의 입장은 단호했다. "그라운드에서 함께 뛰는 후배들에게 체력에서 밀리거나 민폐가 된다고 생각될 때는 당장이라도 그만둘 것"이라고 했다. "나 때문에 후배들이 한발이라도 더 뛰게 되거나, 팀에 도움이 안될 경우 미련없이 떠나겠다"는 것이다. 철인의 비결은 철저한 자기관리와 프로정신이었다. '매경기 최선을'이라는 각오로 나선 한경기 한경기가 쌓여 400경기가 됐다. 매일 훈련에 나서기전 단 한번도 20~30분의 웨이트트레이닝을 빼놓은 적이 없다. 특별히 챙겨먹는 보약도 없다. "부모님께 튼튼한 유전자를 물려받은 것같다"며 웃었다.

▶팀과 가족 위해 뛰는 '터프한 아버지'

뼛속부터 팀플레이어인 김한윤에게 400경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골을 넣거나, 상을 받았던 경기가 아니었다. 가장 아쉬웠던 경기가 가장 많이 생각난다. "2008년 수원과의 챔피언결정 2차전, 눈발이 날리는 가운데 쓰라린 패배의 눈물을 글썽이던 동료들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FC서울 시절 승리는 때로 당연했다. 그러나 부산에서 보낸 지난 2시즌동안 승리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배웠다고 했다. "서울에 있을 때는 한두명이 잘해서 승리할 때도 있었다. 부산에서는 팀 전원이 사력을 다해 한마음으로 똘똘 뭉쳐야만 승리할 수 있다. 그만큼 우리에게 1승의 의미는 크고 소중하다"고 설명했다.

김한윤은 K-리그 통산 최다 경고수를 보유한 선수로도 유명하다. "터프한 플레이로 어린 후배들을 일부러 다치게 한다는 '오해'는 지금까지도 가슴아프다"고 했다. 무려 128회의 옐로카드를 받았다. 그러나 지난 16시즌 동안 받은 레드카드는 단 3장에 불과하다. 팀을 위해 영리하게 경고 관리를 했다는 뜻이다. "올 시즌에만 레드카드를 2번 받았다"며 아쉬워했다. "예전에는 심판과의 '밀당(밀고 당기기)'에 승률이 상당히 높았는데, 올해는 승률이 좀 낮아졌다"며 웃었다. 개성 강한 선수답게 별명도 많다. '반칙왕' '카드캡터' '아버지' '한느님' 등등. 가장 마음에 드는 별명을 물었다. "별명에 별 관심은 없지만 '아버지'가 그래도 듣기엔 괜찮더라 서울 있을 때 '(김)치우놈'이 지어준 건데…"라며 수줍게 웃었다. 실제로도 그는 가정적인 아버지다. 3년 전인 서른다섯 뒤늦게 결혼해 얻은 두살배기 아들 지원이가 그라운드에서 뛰는 아빠를 기억할 나이까지 뛰고 싶은 작은 꿈이 있다. 가족은 그를 쉼없이 달리게 하는 힘이다. 그라운드 안에서는 터프하고, 그라운드 밖에서는 따뜻한 '반전 있는 남자'다. 터프하고 따뜻한 '아버지'는 포항전에서 400경기동안 자신을 지켜준 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가득 담아 단팥죽 400그릇을 쏜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