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생존경쟁이 이어지는 프로야구에서 자유계약선수(FA)가 됐다는 건 일단 성공적으로 선수생활을 했다는 걸 의미한다. FA는 9년간 큰 부상없이 꾸준하게 활약을 했을 때 주어지는 보상이라고 할 수 있다. 소속팀의 울타리를 벗어나, 시장에서 자신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이고, 스타선수들에게는 로또같은 대박 찬스다. 최근 KIA 타이거즈와 4년간 총액 50억원(인센티브 포함)에 계약한 김주찬은 계약금이 무려 26억원이다. 요즘 웬마한 로또 1등 상금과 비슷한 액수다. 다른 재화와 마찬가지로 FA 몸값도 시장에서 수요가 공급을 초과할 때 급등한다. 외야수 김주찬의 경우 빠른 발과 타격 능력도 매력적이지만, 원소속팀 롯데에 한화, KIA가 영입전을 펼치면서 가격이 치솟았다. LG가 내부 FA 이진영 정성훈과 재빨리 계약을 해 FA 영입에 나선 팀이 선택의 폭이 줄었다는 점, 또 전력보강이 절실한 KIA와 한화의 팀 내 사정도 김주찬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야구판에서는 KIA가 60억원에 육박하는 돈을 베팅했다는 소문까지 나돌고 있다. 시장규모 대비 몸값의 적정성 논란을 떠나 FA 자격 취득은 선수들에게 달콤한 열매이자 자극제이다. 김주찬의 50억원은 역대 두번째로 높은 FA 계약 금액이다.
구단 입장에서 보면 FA 영입이 가장 확실한 전력 보강 방법이라고 할 수 있지만, 투자한 만큼 성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실패 사례도 얼마든지 있다.
지금까지 FA 대박을 터트린 선수들은 과연 구단의 기대에 부응을 했을까. 대체적으로 검증을 거친 선수들이었기에 대다수가 어느 정도 성적을 냈다. 그러나 구단이 투자를 한만큼 충분히 결과를 얻었다고는 볼 수 없을 것 같다. 대박의 주인공 대다수가 약속이나 한 듯 전성기 때 성적에 미치지 못했다.
총액 기준으로 역대 FA 베스트 5의 사례를 살펴보자. FA 계약 이전과 계약 기간 내 성적을 비교하기 위해 현재 계약이 진행중인 선수, 올해 계약한 선수는 리스트에서 뺐다
역대 최고 금액(KBO에 다년계약으로 통보한 금액 기준)은 2005년 삼성과 4년간 총액 60억원에 계약한 심정수이고, 장성호(2006년 KIA 재계약· 4년 42억원), 정수근(2004년 두산→롯데·6년 40억6000만원), 박명환(2007년 두산→LG·4년 40억원), 박진만(2005년 현대→삼성·4년 39억원)이 뒤를 따르고 있다.
그런데 이들 5명 모두 FA 자격을 취득하기 전 2년 성적보다 FA 계약 기간 성적이 안 좋았다.
먼저 심정수를 보자. 그는 현대 소속이던 2003년과 2004년 2년 동안 타율 3할, 75홈런, 220타점을 기록했다. 2003년에는 이승엽과 홈런레이스를 펼치며 53개의 홈런을 쏘아올렸다.
이적 첫 해 타율 2할7푼5리, 28홈런, 87타점. 현대 시절 가장 좋았을 때보다 한참 떨어지지만 나름대로 준수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2006년 부상으로 26경기 출전에 그친 심정수는 2007년 31홈런, 101타점으로 부활을 알리는가 싶었다. 그러나 2008년 부상에 발목이 잡혀 22경기 출전, 타율 2할3푼5리, 3홈런, 7타점의 초라한 성적으로 4년 계약의 마지막 시즌을 마감했다. 4년간 타율이 2할5푼3리, 63홈런, 202타점. FA 직전 2년간 타율 3할은 물론, 통산타율 2할8푼7리에도 크게 밑도는 성적이다.
2006년 소속팀 KIA에 잔류한 장성호는 약간 상황이 다르다. FA 계약에 앞선 2년 동안 타율 3할, 35홈런, 154타점을 기록했는데, 이후 4년간 타율 2할9푼4리, 38홈런, 226타점을 기록했다. 계약 첫 해인 2006년 3할6리를 기록해 9년 연속 3할 타율을 작성했다. 얼핏보면 FA 이전과 이후 성적에 큰 차이가 없어보인다. 그러나 타점이 줄었고, 최희섭의 팀 합류 이후 입지가 좁아지면서 출전경기가 수가 줄었다. 또 이전과 마찬가지로 이 기간에도 영양가가 떨어진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분명한 건 당대 최고의 교타자 중 한 명으로 꼽혔던 장성호가 FA 계약 기간에는 최고의 기량을 못 보여줬다는 것이다.
2004년 6년간 40억6000만원에 롯데 유니폼을 입은 정수근도 두산 시절 그라운드를 휘저었던 그 정수근과 거리가 있었다. 6년간 타율이 2할8푼1리, 10홈런, 147타점. 타율 2할6푼7리, 3홈런, 39타점을 기록한 FA 계약 직전의 2년보다 대략적인 성적은 좋았다. 그러나 도루수가 급격하게 줄었다. 두산 시절 7시즌 동안 40도루를 기록했는데, 롯데에서 6년 간 101도루에 그쳤다. 한해 16.8개 꼴이다. 더구나 정수근은 불미스러운 사건에 휘말려 구단 이미지를 훼손했다.
2007년 LG와 4년간 40억원에 계약한 박명환은 부진의 정도가 심각한 수준이다. LG 소속으로 4년 동안 14승(16패·평균자책점 4.79)를 기록했으니, 단순하게 총액 기준으로 따져보면 1승당 2억8571만원꼴이다. FA 계약 직전 2년과 이후가 너무나 극명하게 대비가 된다. 박명환은 앞선 2년간 48경기에 등판했는데, LG 이적후 4년 동안 부상 때문에 52경기 등판에 그쳤다.
2005년 현대에서 삼성으로 이적한 박진만의 계약 조건은 4년간 총액 39억원. 2003년과 2004년, 두 시즌 동안 타율 2할8푼4리, 33홈런, 117타점을 기록한 박진만은 삼성에서 4년 동안 타율 2할7푼3리, 30홈런, 203타점을 마크했다. 박진만의 경우 타격보다 안정적인 내야 수비로 인정을 받은 선수다. 타격뿐만 아니라 수비 등 종합적인 면을 고려했을 때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다.
FA 대박을 터트린 선수들이 계약한 후 이전에 비해 성적이 떨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FA 자격 취득을 앞둔 선수들은 보통 무리를 하는 경향이 있다. 인성이나 리더십 등이 고려되기도 하지만, 선수의 가치, 몸값에 대한 평가는 결국 수치화된 기록을 통해 이뤄진다. 이 때문에 선수들은 몸값을 높이기 위해 오버페이스를 하고, 부상까지 숨기는 경우가 있다. 선수 자신이 갖고 있는 잠재력의 최대치를 짜내려다보니 몸에 무리가 오고 후유증이 생기는 것이다. FA 계약후 크고작은 부상에 시달리는 선수들을 쉽게 볼 수 있다. FA 자격을 얻는 다는 게 선수들에게 동기부여가 되지만 장기적으로 안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얘기다.
보통 선수들은 계약을 할 때 인센티브를 최대한 줄이고 보장금액을 높이려 애쓴다. 특급 선수들의 경우 계약금이 10억원이 넘는다. 가치를 인정받은 상태에서 안정적으로 운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됐다고 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현실 안주의 유혹이 따른다. FA 계약을 한 선수들은 한결같이 팀 우승에 기여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지만, 아무래도 이전보다 동기부여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대박을 터트린 김주찬은 내년 시즌 어느 정도 성적을 보여줄 수 있을까.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
◇역대 FA 빅 5 계약 내용과 계약기간 내 성적
심정수=2005년 현대→삼성=4년 60억원=타율 2할5푼3리, 63홈런, 202타점
장성호=2006년 KIA 재계약=4년 42억원=타율 2할9푼4리, 38홈런, 226타점
정수근=2004년 두산→롯데=6년 40억6000만원=타율 2할8푼1리, 10홈런, 147타점, 101도루
박명환=2007년 두산→LG=4년 40억원=52경기(270⅓이닝) 등판 14승16패, 평균자책점 4.79
박진만=2005년 현대→삼성=4년 39억원=타율 2할7푼3리, 30홈런, 203타점
*구단이 KBO에 공식 통보한 다년계약 기준